정부가 지필고사(필기시험)를 폐지하고 경시대회 수상자 등을 우대하는 특별전형을 없애기로 하는 등 외국어고와 과학고 입시제도를 바꾸기로 함에 따라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특목고 입시에서 중학교 내신 위주로 학생을 선발해 사교육을 줄인다는 방침이지만 중학교 내신을 위한 새로운 사교육을 유발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와 여당은 18일 당정협의회에서 고입과 대입의 학생선발 방법 다양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방침 아래 2010학년도부터 외국어고의 지필고사를 폐지하기로 했다. 일부 외고가 구술면접을 보면서 필기고사형으로 변형해 시험을 봤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없앤다는 방침이다. 또 영어 듣기평가의 경우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어려워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지적에 따라 앞으로 중학교 교과 과정 수준으로 난이도를 조정키로 했다.

당정은 중학교 내신 반영에서도 수학과 과학 가중치를 합리적으로 부여키로 해 현재 지나치게 높은 가중치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가중치는 중학교 내신 성적을 산출할 때 국어처럼 수업시간이 많은 과목과 음악처럼 수업시간이 적은 과목이 모두 똑같이 1단위로 반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학교들이 국 · 영 · 수 등 주요 교과목 점수에 일정 수치를 곱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지역 외고는 그동안 수학 과학의 가중치를 최대 17배까지 높였으나 앞으로는 수업시수(보통 주당 4시간)까지만 가중치를 부여키로 했다.

과학고 입시에서는 2011학년도부터 경시대회 입상자,영재교육원 수료자 등을 위한 특별전형을 폐지하는 대신 입학사정관 전형과 과학캠프를 활용한 KAIST식 창의력 측정 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게 교과부 구상이다. 과학고의 경우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선발하는 학생의 정원을 2011학년도까지는 입학생의 30~50% 범위에서 교육청별로 자율적으로 정하고 이후 최소 50%까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국제올림피아드 출전자는 학교장 추천 및 학회심사를 통해 선발하고 영재학급 · 영재교육원 대상자도 영재교사의 관찰 및 추천을 통해 선발하도록 전환된다. 또 사교육비 절감과 관련한 시 · 도교육청의 책무성 강화를 위해 관련 성과를 교육청 평가배점의 50%로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이 밖에 당정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육 과정과 교원 인사 등의 학교 운영 관련 핵심 권한을 학교장에게 직접 부여하는 '학교 운영 자율화'와 수준별 맞춤형 수업 및 교과목 선택 다양화를 골자로 하는 '교과 교실제'를 확대 운영키로 했다. 또 지난 4월 국회 처리가 무산됐던 교원평가제를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키로 했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서는 방과후학교를 활성화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교사에게는 적극적으로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다만 영리학원에 방과후학교 위탁운영을 맡기지 않기로 했다. 또 학원비 안정을 위해 수강료 공개와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곽승준 미래기획위 위원장이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제안해 논란을 빚었던 '밤 10시 이후 심야교습 금지' 방안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학원 새벽반' '불법 고액과외' 와 같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등 정부의 자율정책에 반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혀 사실상 무산됐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법률로 오후 10시 이후 학원 교습을 금지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정부 측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원 교습시간을 오후 10시로 제한하는 것은 성장기 학생의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한 측면에서 검토하면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학부모나 지역 교육의 현실에 맞게 해야지 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은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교과교실제가 우열반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임 정책위의장은 △전 학년 전 과목 수준별 교과교실제 △교과목 중심의 교과교실제 △일부 교과에 대한 수준별 수업 등 세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태웅/이준혁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