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 폴 크루그먼 교수 "이번 위기 10년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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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19일 열린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 '신용위기와 세계 경제'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통해 제기한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다. 작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 교수는 "아직은 세계 경제가 중환자실에서 나온 정도이며 완전히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너무 빠르게 회복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가 더 두렵다"고 말했다.
◆위기를 예고하는 증거가 있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1998년에 미국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하는 등 10년 후의 상황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증거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례적인 상황이고 재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번 위기 이후의 세대는 리스크를 더 세심하게 살피고 합리적으로 투자하는 세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루그먼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이번 위기를 단순히 '미국발 신용위기'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상황인식에서 나왔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위기가 시작돼 세계로 확산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라며 "그렇지만 미국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서유럽의 주택 시장 붐이나 동유럽으로의 자본 유입 등 거품이 부풀려져 있어서 어느 시점에는 무너져 내리게 돼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예컨대 미국은 연안 지역에만 주택 거품이 있었지만 아일랜드는 전국적으로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고 설명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2005년 당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내정자가 말한 '안정적인 성장기(great moderation)'에 대해 "20년간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 당시 대공황은 할아버지 세대의 문제라고 간주하면서 너무 과도한 리스크를 감수했던 것이 큰 문제로 불거졌다"고 말했다.
◆대공황 없겠지만 어려움은 지속될 것
크루그먼 교수는 이번 위기가 단순한 신용위기를 넘어선 것이라며 "대공황이 다시 오지는 않겠지만 침체기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선 현재의 상태에 대해 "채권 가산금리가 하락하는 등 금융시스템이 안정되면서 위기의 가장 힘든 국면은 지나온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과다한 차입이 있었고 이에 따른 디레버리지(deleverage · 차입 축소) 과정은 상당히 길 것"이라며 "이번 위기가 결말을 향해 다가가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과도한 국채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아일랜드는 과도한 부채에 발목을 잡혀 지출을 줄이고 과세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불황 타개를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며 "이 같은 문제가 다른 국가로 확대된다면 세계 경제의 실질적인 회복은 더욱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금리가 낮아졌지만 기업의 투자가 활발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은 자본비용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그는 경기침체가 기술적으로는 올해 하반기에 종료된다고 하더라도 고용 시장 악화는 2013~2014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림자 금융'에 규제강화 필요
크루그먼 교수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다만 "각국 정부의 환경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기후변화협약에 동참하고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경제 회복에 일부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요 부족은 지속될 것이며 수출을 할 수 있는 다른 행성을 만들지 않는 한 일본처럼 수출 붐을 통해 불황을 타개할 가능성은 적다"는 기존의 전망을 되풀이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 같은 위기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은행 등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system)'에 대해서도 전통적인 상업은행과 똑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 발생 때 정부가 구제를 해줘야 하는 금융회사라면 평상시에도 똑같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2003년에 미국 은행 규제당국이 규제완화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톱을 들고 사진을 찍었던 일이 기억난다"며 "이 같은 태도가 위기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유창재/조귀동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