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은퇴한 마해영(39 · Xports 해설위원)이 "프로야구 선수 일부가 금지약물을 복용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마해영은 19일 발간한 회고록 《야구본색》(미래를소유한사람들 펴냄)에서 "엄격히 금지된 스테로이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선수들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 선수들의 복용 비율이 훨씬 높아 보이지만 사실은 한국 선수들도 있었다"며 "성적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쉽게 유혹에 빠지는데 면접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 우황청심환을 찾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주장했다.

국내에서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 책을 통해 금지약물 복용 실태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에서는 2005년 쿠바 출신의 강타자 호세 칸세코가 자서전에서 선수들 사이에 만연한 금지약물 복용 실태를 폭로해 미국 의회에서 직접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마해영의 약물실태 폭로를 전해들은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 구단은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경기에 앞서 마해영의 출판기념 사인회를 허용했다가 책 내용을 전해 들은 뒤 곧바로 취소했다.

이에 대해 마해영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약물 사용은 분명 있었다"고 강조한 뒤 "아무래도 용병이 (약물에) 접근하기 쉬웠고 그들을 통해 국내 선수들도 약물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얘기하면 말이 바뀔까봐 직접 책을 쓰게 됐다"며 "특정 선수를 거론한 것도 아니고 '선'을 넘지 않는 차원에서 일반적인 상황을 적은 것뿐이다. 다만 이 일을 계기로 약물 복용 사례 같은 것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마해영은 또 책을 통해 올해 초 김재박 LG 감독이 제기했던 선수들 간의 '사인 거래'도 일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동문이나 가까운 선후배가 '나 오늘 못 치면 2군 내려간다'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십중팔구 사인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분명히 있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밝힌 건 선수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원인을 야구팬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선후배가 절박한 처지에 처했을 때 팀 승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선수들은 사인 거래를 했고,주전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을 때 일부 선수들은 위기를 벗어나고자 약물을 택했다고 그는 적었다.

이 밖에 그는 트레이너 말을 무시하는 감독들의 행태와 구단 사장 · 단장들의 마케팅 능력,선수협의회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그러나 "이슈를 만들고자 스테로이드 사용을 밝힌 건 아니다. 야구에 도움이 안되는 쪽으로 부각이 되는 것도 옳지 않다"라며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고두현/김주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