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프린스 전 씨티그룹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해야 하며,자산시장에 거품이 형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리스크(위험)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투자은행(IB)이 종말을 맞았다는 일부의 견해는 지나치다"며 "규모와 형태가 달라질지는 몰라도 IB의 역할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린스 전 회장은 '미국 투자은행 모델의 전제조건과 아시아 투자은행을 위한 교훈'이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에서 "비록 글로벌 금융위기에 미리 대처하지는 못했지만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때 미국 월스트리트 최정상의 자리에 서 있었던 프린스 전 회장은 자신을 포함한 금융인들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일해왔던 월스트리트라는 세계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프린스 전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크게 4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세계적 차원의 불균형이다. 그는 "미국 경제가 막대한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자본이 미 국채 등에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빠져 나간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옴으로써 미국 경제가 유지될 수 있었고 이 같은 구조를 통해 전 세계 경제가 호황을 누렸다는 것이다.

프린스 전 회장은 그러나 "미국의 경제성장이 한계에 이르고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 되면 이 같은 구조는 매우 불안정해진다"며 "이런 불균형이 금융위기의 바탕이 됐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FRB는 2000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와 2001년 9 · 11 테러 등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적절한 시점에 금리를 올리지 못했다는 게 프린스 전 회장의 분석이다. 그는 "FRB는 금리 인상이 경제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했다"며 "이후 FRB는 자산시장 거품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렸지만 때가 늦어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세 번째 문제는 허술한 금융 규제 및 감독 체계다. 프린스 전 회장은 "금융산업이 발전하면서 금융상품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갔는데 감독당국이 이를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도 위기를 부채질한 요인이었다는 게 프린스 전 회장의 견해다.

미국 정부가 서민층에 주택을 보급하겠다는 명분으로 신용이 낮은 계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활성화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느슨하게 한 점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프린스 전 회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활성화는 공화당과 민주당,금융업계,서민 등 모두가 환영한 정책이었지만 그로 인한 리스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고 말았다"고 밝혔다.

한때 천재라고 칭송받던 금융업 종사자들의 문제도 지적했다. 프린스 전 회장은 "수학적인 절차에 따라 위험을 예측하고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만연해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근거가 없는 믿음이었다"고 회고했다.

프린스 전 회장은 그러나 IB 모델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클레이즈가 리먼브러더스의 일부 사업을 인수하고 소시에테제네랄도 IB 부문을 확대하겠다고 한 이유를 생각해 보라"며 "규모는 작아질 수 있지만 IB 자체가 종말을 맞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융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관리상 어려움이 생기는 게 사실이지만 대형화 자체가 금융위기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프린스 전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조기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 간 공조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세계적인 불균형을 해결하고 제2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수"라며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선 정치적인 차원의 협력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을 규제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깨달은 교훈 중 하나"라며 "금융감독에서도 국제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가 간 공조의 큰 틀 안에서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부양 △자산시장 거품 방지 △파괴적인 인플레이션 예방 등 3가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저금리로 인해 자산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공학에 대한 맹신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스크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은 단지 수학적인 명민함을 뛰어넘는 뭔가를 의미한다"며 "보다 정확하게 리스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