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간 가장 큰 문제점은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 이미 '한판 붙어 보자'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방 얘기가 귀에 들어오겠어요. 무엇보다 서로 경청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

민주노총 투쟁의 선봉에 섰던 핵심 간부가 노사화합 도우미로 변신했다. 최근 노동부 교섭협력관(서기관급)으로 특채된 황명진 전 민노총 조직쟁의실장(43)이 주인공이다.

교섭협력관은 노동부가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임단협 등 노사교섭 지도,노사 분규의 예방 · 수습 지원,복수노조 도입에 따른 노노갈등 해소 등을 돕는다는 취지로 최근 도입한 제도.3명을 모집한 이번 협력관 특채에는 노동 운동가 등 29명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보였다. 황 협력관 외 오길성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연우 전 포항전문건설협회장이 채용됐다. 이들은 포항 울산 천안 등에 파견돼 활동하게 된다.

황 협력관은 20세의 나이에 전태일씨로 인해 유명한 청계피복노조의 전임자를 맡아 구속되는 등 20여년을 노동 운동에 몸담아 왔다. 청계피복노조 위원장이던 1995년 민노총 창립 멤버로 참여,대외협력국장 조직쟁의실장을 거쳤다. 조직쟁의실장을 지내면서 KT 파업,사회보험노조 파업 투쟁 등을 주도했다.

그가 근무하게 될 포항 지역은 금속노조,화물연대 등 강성 노조 소속 업체들이 즐비한 곳이다. 빨간 머리띠를 같이 맸던 '동지들'을 노사 화합의 장으로 끌어내는 책무를 맡게 된 셈이다. 황 협력관은 무엇보다 노사 양측의 의사소통 구조를 바꾸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실 임단협 내용만 보면 충분히 합의안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불신이 가득한 상황에서 감정만 자극하다 보니 극단적으로 흐르게 되는 거죠." 일단 감정의 골이 패이면 임단협 이후에도 고소 · 고발 등 법률적 절차를 통해 서로에게 또다시 생채기를 남기게 되고,결국 평행선을 달리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황 협력관은 "임단협 등 노사관계 전반에 대한 공식적 원칙과 내용을 일단 정하면 서로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신뢰를 쌓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과 같은 경제 위기에는 노사 문제뿐만 아니라 노사와 지역이 힘을 합쳐 가정 문제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민노총에 대해선 '쇄신과 소통'을 주문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투쟁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이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내키지 않는다면 공개 포럼이나 세미나 등 다른 소통 기회를 스스로 만들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한다고 그는 조언했다.

글=고경봉/사진=강은구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