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높이 1m짜리 축소 모형 하나로 미국 풍력발전 설비 시장을 뚫었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시엘로사와 2.5㎿(메가와트)급 풍력발전기 3기를 2011년까지 텍사스주에 설치하기로 하는 내용의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20일 발표했다. 지난해 풍력발전 사업에 뛰어든 삼성중공업이 2.5㎿급 설비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생산공장이나 양산 모델도 없이 GE 등 세계적인 업체들을 제치고 미국 시장 진출을 이뤄낸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이달 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WIND POWER 2009' 전시회에 풍력발전기를 실제 크기의 4분의 1로 줄인 모형(높이 1m,길이 2.7m,폭 1.1m)을 출품,곧바로 계약을 이끌어냈다. 삼성중공업이 시엘로사에 공급하기로 한 풍력발전기 3기의 가격은 750만달러다. 비록 공급 규모는 크지 않지만 풍력발전 설비 공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자체 개발 모델만으로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1970년 조선소를 착공하기도 전에 거북선 그림이 들어 있는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보여주며 선박을 수주,조선 최강국의 기틀을 세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삼성중공업이 이처럼 모형 하나로 미국 풍력발전기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과 건설 등 기존 사업 부문에서 쌓은 노하우를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풍력발전 설비의 핵심 장치인 블레이드(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장치)가 선박 프로펠러와 비슷한 데다 구동장치,제어시스템 등에도 조선 관련 기술력을 그대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 삼성중공업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선박 프로펠러 기술을 풍력발전에 접목해 보자'는 삼성중공업식 발상의 전환으로 급팽창할 것으로 보이는 미국 풍력발전기 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 풍력발전 관련 시장은 125억달러 규모였다.

삼성중공업은 이번 미국 풍력발전 설비 시장 진출을 계기로 풍력발전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총 6000억원을 들여 2010년까지 2.5㎿급 육상 설비와 5㎿급 해상 설비를 연간 200기씩 생산할 계획이다. 2015년에는 풍력발전 설비 사업에서만 매출 3조원(800기 생산)을 기록,세계 7위권(시장 점유율 10%)에 진입한다는 중 · 장기 목표도 수립했다.

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은 "35년간 조선과 건설 분야에서 쌓은 연관기술을 활용해 미국 및 유럽의 상위 6개사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풍력발전 설비 시장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향후 해저자원 개발사업 등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적극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