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의 와인 있는 서재] 자연처럼 순환하는 '와인의 일생'…과학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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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와인의 윤회
"와인도 태어나서 죽기까지 그 나름의 일생이 있고,윤회의 과정을 거쳐 다시 태어난다.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포도의 일생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며 부정할 수 없는 과학이다. 더구나 텁텁하거나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에서 화이트,연분홍 로제까지 모든 와인은 자연에서 거의 비슷한 일생의 순환을 반복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로마의 영웅 카이사르가 마시던 달달한 와인을 만들 때 사용된 이산화탄소가 어제 내가 마신 와인의 생산에 다시 사용됐을지도 모른다. 또한 루이 15세의 우아한 애첩이었던 마담 퐁파두루와 언젠가 샴페인에 사용된 물을 통해 만날 수 있다고 상상만 해도 이미 황홀하다. 그러나 은밀한 비밀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와인의 일생을 설명하려고 굳이 복잡한 과학지식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졸면서 배운 상식 수준의 '광합성' 원리와 효모가 당분을 분해하여 알코올을 만드는 '알코올 발효과정'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충분하다.
포도나무는 땅속 깊이 내린 뿌리를 통해 다양한 영양분과 물을 빨아들인다. 푸른 잎의 엽록소는 태양 빛을 에너지 삼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을 합성해 당분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식물의 광합성 과정이다. 당분은 씨가 있는 포도 알 속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그러나 수확기를 넘긴 포도 알에서는 터진 껍질 사이로 달콤한 포도즙이 흘러나온다. 이때 껍질 위에 허옇게 붙어있던 효모들이 포도즙에 달려들어 당분을 분해한다. 이 알코올 발효과정의 결과물이 와인이며,부산물로 많은 열과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열과 이산화탄소는 발생 즉시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포도는 다른 과일들과 달리 껍질에 발효 효모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므로,포도 알 하나하나가 모두 작은 양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기에 노출된 와인은 박테리아나 산화(酸化)되어 식초로 변한다. 식초를 뜻하는 영어 '비네가(vinegar)'의 어원은 프랑스 고어 '비네그르(vinaigre)'다. 비네그르는 와인(vin)과 시다(aigre)의 합성어로,'시어진 와인'이란 뜻이다. 식초는 다시 공기 중에 있는 박테리아의 공격을 받아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 이때 물은 땅속으로 잦아들고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으로 날아간다. 결국 모두가 처음 시작했던 제 자리로 돌아가,또다시 진행될 포도나무의 광합성 과정에 참여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이 순환 과정은 방해요소만 없다면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러나 변수는 인간이다. 적당한 알코올 농도에 감미로운 맛과 향을 가진 투명한 와인을 원하는 인간은 순환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다. 때로는 진행을 돕지만,결정적 단계에서는 화학물질과 첨단장비까지 동원해 적극적으로 막는다.
포도 재배농가에서는 단맛이 풍부한 포도 알이 많이 영글도록 튼튼한 묘목을 골라 심고 햇볕이 잘 들게 가지를 친다. 와이너리에서는 특별히 배양된 건강한 효모를 알코올 분해과정에 투입하는 것은 기본이며,온도와 습도조절이 되는 스테인리스 통같이 효모가 활발하게 당분을 알코올로 전환시킬 환경을 만든다. 그러나 일단 생산된 와인이 쉽게 식초로 변하지 않도록 각종 화학물질의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와인제조에 쓰이는 산화방지제는 질소,이산화탄소,이산화황가스 등이다. 그러나 이들 때문에 와인을 마신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사용에 엄격한 규제가 따른다. 또한 병 뒷면 라벨에 "이 와인에는 이산화황(Sulphur Dioxide)이 들어있지만 인체에는 해가 없다"라는 문구를 넣도록 규정도 만들었다.
현대인이 선호하는 투명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으로 여과(filtering)와 정화(fining) 과정을 거친다. 이때 원심분리기를 비롯한 각종 장비와 함께 다양한 촉매제가 사용된다. 과거에는 황소의 피,달걀 흰자위,생선부레,우유 등도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진흙의 일종인 '벤토나이트'의 사용빈도가 가장 높다.
실제로 20세기 중반까지는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에 과학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당분이 어떻게 알코올로 변하는지 자세히 알게 된 것도 19세기 중반 프랑스에 살았던 루이 파스퇴르 덕분이다.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와인이 제일 좋은 와인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기후 좋은 해에는 우수한 와인이 많이 생산되지만,그렇지 못한 해에는 질과 생산량이 크게 떨어지는 점은 생산자들의 고민거리다. 현대 와인의 스타일과 품질은 얼마나 많은 과학지식과 첨단장비가 사용됐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호주 같은 신대륙이 주장하는 '과학이 품질을 만든다"(Technology can create Quality)라는 구호가 힘을 받는 시대다.
/와인 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sowhatchoi@gmail.com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포도의 일생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며 부정할 수 없는 과학이다. 더구나 텁텁하거나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에서 화이트,연분홍 로제까지 모든 와인은 자연에서 거의 비슷한 일생의 순환을 반복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로마의 영웅 카이사르가 마시던 달달한 와인을 만들 때 사용된 이산화탄소가 어제 내가 마신 와인의 생산에 다시 사용됐을지도 모른다. 또한 루이 15세의 우아한 애첩이었던 마담 퐁파두루와 언젠가 샴페인에 사용된 물을 통해 만날 수 있다고 상상만 해도 이미 황홀하다. 그러나 은밀한 비밀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와인의 일생을 설명하려고 굳이 복잡한 과학지식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졸면서 배운 상식 수준의 '광합성' 원리와 효모가 당분을 분해하여 알코올을 만드는 '알코올 발효과정'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충분하다.
포도나무는 땅속 깊이 내린 뿌리를 통해 다양한 영양분과 물을 빨아들인다. 푸른 잎의 엽록소는 태양 빛을 에너지 삼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을 합성해 당분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식물의 광합성 과정이다. 당분은 씨가 있는 포도 알 속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그러나 수확기를 넘긴 포도 알에서는 터진 껍질 사이로 달콤한 포도즙이 흘러나온다. 이때 껍질 위에 허옇게 붙어있던 효모들이 포도즙에 달려들어 당분을 분해한다. 이 알코올 발효과정의 결과물이 와인이며,부산물로 많은 열과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열과 이산화탄소는 발생 즉시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포도는 다른 과일들과 달리 껍질에 발효 효모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므로,포도 알 하나하나가 모두 작은 양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기에 노출된 와인은 박테리아나 산화(酸化)되어 식초로 변한다. 식초를 뜻하는 영어 '비네가(vinegar)'의 어원은 프랑스 고어 '비네그르(vinaigre)'다. 비네그르는 와인(vin)과 시다(aigre)의 합성어로,'시어진 와인'이란 뜻이다. 식초는 다시 공기 중에 있는 박테리아의 공격을 받아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 이때 물은 땅속으로 잦아들고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으로 날아간다. 결국 모두가 처음 시작했던 제 자리로 돌아가,또다시 진행될 포도나무의 광합성 과정에 참여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이 순환 과정은 방해요소만 없다면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러나 변수는 인간이다. 적당한 알코올 농도에 감미로운 맛과 향을 가진 투명한 와인을 원하는 인간은 순환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다. 때로는 진행을 돕지만,결정적 단계에서는 화학물질과 첨단장비까지 동원해 적극적으로 막는다.
포도 재배농가에서는 단맛이 풍부한 포도 알이 많이 영글도록 튼튼한 묘목을 골라 심고 햇볕이 잘 들게 가지를 친다. 와이너리에서는 특별히 배양된 건강한 효모를 알코올 분해과정에 투입하는 것은 기본이며,온도와 습도조절이 되는 스테인리스 통같이 효모가 활발하게 당분을 알코올로 전환시킬 환경을 만든다. 그러나 일단 생산된 와인이 쉽게 식초로 변하지 않도록 각종 화학물질의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와인제조에 쓰이는 산화방지제는 질소,이산화탄소,이산화황가스 등이다. 그러나 이들 때문에 와인을 마신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사용에 엄격한 규제가 따른다. 또한 병 뒷면 라벨에 "이 와인에는 이산화황(Sulphur Dioxide)이 들어있지만 인체에는 해가 없다"라는 문구를 넣도록 규정도 만들었다.
현대인이 선호하는 투명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으로 여과(filtering)와 정화(fining) 과정을 거친다. 이때 원심분리기를 비롯한 각종 장비와 함께 다양한 촉매제가 사용된다. 과거에는 황소의 피,달걀 흰자위,생선부레,우유 등도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진흙의 일종인 '벤토나이트'의 사용빈도가 가장 높다.
실제로 20세기 중반까지는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에 과학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당분이 어떻게 알코올로 변하는지 자세히 알게 된 것도 19세기 중반 프랑스에 살았던 루이 파스퇴르 덕분이다.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와인이 제일 좋은 와인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기후 좋은 해에는 우수한 와인이 많이 생산되지만,그렇지 못한 해에는 질과 생산량이 크게 떨어지는 점은 생산자들의 고민거리다. 현대 와인의 스타일과 품질은 얼마나 많은 과학지식과 첨단장비가 사용됐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호주 같은 신대륙이 주장하는 '과학이 품질을 만든다"(Technology can create Quality)라는 구호가 힘을 받는 시대다.
/와인 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sowhat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