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불러온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지난해 12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구속되면서 본격화됐다. 검찰은 당시 세종증권 매각과 농협 자회사 휴켐스 인수를 둘러싼 비리를 수사해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와 고교동창 정화삼씨,후원자인 박 회장 등 12명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지난 3월14일부터 박 회장을 상대로 정치권 로비설을 집중 신문하면서 노 전 대통령 주변에 대한 수사로 다가섰다. 박 전 회장의 돈 50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를 통해 아들 건호씨에게 건네진 정황을 포착한 데 이어 지난달 7일에는 노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정상문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을 체포했다. 이날 오후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집에서(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에게서 100만달러를 받아 채무변제에 썼다"고 밝혔다. 자신이 아닌 권 여사가 돈을 받아 불법은 아니라는 취지의 얘기였지만,이는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계기로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 측에서 돈을 받은 것을 실토한 만큼 검찰로서는 실제 돈을 받은 당사자가 노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주력했다. 검찰은 이후 연철호씨를 체포한 데 이어 권 여사와 건호씨를 잇따라 소환조사하고 정 전 비서관을 구속하는 등 수사를 가속화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 방침을 밝히고 지난달 24일 소환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측에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검찰 소환조사에서 "아니다","모른다","기억이 안 난다" 등의 말로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소환조사에서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는 데 그친 검찰은 당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 여부를 이달 초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100만달러 용처에 대한 조사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밝히며 권 여사 재소환 이후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처리를 미뤄왔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2007년 9월 박 전 회장의 돈 40만달러를 송금받아 미국 뉴저지주의 고급아파트 허드슨클럽 400호를 사는 데 사용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검찰은 이 돈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포괄적 뇌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측이 100만달러의 용처에 대한 설명을 계속 바꾸면서 '거짓말' 의혹이 불거졌다.

당초 검찰은 이르면 23일 권 여사를 재소환해 조사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재소환은 무산됐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