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너무 늦은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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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선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자살을 금기(禁忌)로 여겼다.
아무리 자신의 목숨이라도 마음대로 버려서는 안될 신성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자살한 사람의 주검을 말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게 했고 재산을 국고로 환수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자살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 군왕에 대한 충성이나 수절을 위해 목숨을 끊으면 정문(旌門)을 세워주고 부역과 세금을 면제해 주는 풍습까지 있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비인간적이라는 혹평을 면치 못할 일이지만 불과 한세기 전만 해도 그랬다.
이런 시각 차이때문인지 서양에선 자살한 사람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오죽했으면 목숨을 끊었겠느냐'면서 동정하는 경우가 많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중에 한국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1.5명으로 OECD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서거했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집단자살이 잇따르고 있는 터에 생긴 비극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자살론'을 쓴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은 도와달라는 마지막 호소다. 그러나 너무 늦은…'이라고 했다. 1962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된 미국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한쪽 팔도 전화기에 닿아 있었다고 한다. 자살 원인에 대해선 말들이 많으나 마지막 순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의 끈을 놓으려는 사람으로선 한없는 절망속에서 빠져 나올 길이 보이지 않겠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도움을 호소할 곳은 있다. 한순간 뒤엉킨 생각을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는 의외로 사소한 데서 발견되기도 한다. 자살이 미수에 그치는 경우 86%는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일단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보면 자살에 이르게 한 원인과 충격이 대부분 흐릿해져 다시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삶은 어차피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며 흘러가기 마련아닌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아무리 자신의 목숨이라도 마음대로 버려서는 안될 신성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자살한 사람의 주검을 말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게 했고 재산을 국고로 환수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자살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 군왕에 대한 충성이나 수절을 위해 목숨을 끊으면 정문(旌門)을 세워주고 부역과 세금을 면제해 주는 풍습까지 있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비인간적이라는 혹평을 면치 못할 일이지만 불과 한세기 전만 해도 그랬다.
이런 시각 차이때문인지 서양에선 자살한 사람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오죽했으면 목숨을 끊었겠느냐'면서 동정하는 경우가 많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중에 한국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1.5명으로 OECD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서거했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집단자살이 잇따르고 있는 터에 생긴 비극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자살론'을 쓴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은 도와달라는 마지막 호소다. 그러나 너무 늦은…'이라고 했다. 1962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된 미국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한쪽 팔도 전화기에 닿아 있었다고 한다. 자살 원인에 대해선 말들이 많으나 마지막 순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의 끈을 놓으려는 사람으로선 한없는 절망속에서 빠져 나올 길이 보이지 않겠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도움을 호소할 곳은 있다. 한순간 뒤엉킨 생각을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는 의외로 사소한 데서 발견되기도 한다. 자살이 미수에 그치는 경우 86%는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일단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보면 자살에 이르게 한 원인과 충격이 대부분 흐릿해져 다시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삶은 어차피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며 흘러가기 마련아닌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