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우리 신한 하나 기업 등 5개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논쟁이 격화하고 있는 유동성 과잉 여부와 관련해 유동성이 실물경제 활동과 비교해선 다소 많은 편이지만 과다하지는 않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 때문에 경기 회복이 기대되는 올 연말 이전에 금리 인상 등 유동성 흡수 정책을 펴서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은행장들은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 같은 은행장들의 견해는 본지가 24일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


◆부동자금 800조원 잘못된 진단

현재 유동성 상태에 대해 이백순 신한은행장과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실물경제 대비 풍부하다'고 답변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실물경제 대비 다소 과잉',윤용로 기업은행장은 '단기 유동성은 풍부하지만 장기자금으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이종휘 우리은행장은 '과잉공급 아니다'라는 판단이다. 이백순 행장은 특히 "지금은 실물경제 정상화가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과잉 유동성 논란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부동(浮動)자금 규모와 관련해 은행장들은 이구동성으로 금융권 단기수신 800조원을 모두 부동자금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강 행장은 "부동자금이 800조원이라면 통화량의 절반을 훨씬 넘는 수준"이라며 "금융위기 이후 증가한 모든 단기수신 금액을 부동자금으로 보더라도 60조원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윤 행장도 "하이닉스 공모에 26조원이 몰린 것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으로 떠돌아다닐 수 있는 부동자금의 규모는 80조원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리인상 연말 이후 바람직

최근 주가 상승에 대해 강 행장과 이백순 행장은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는 과정으로 봤다. 이종휘 행장은 다만 "속도가 빨라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부동산시장에 대해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강 행장과 윤 행장은 "부동산 거품이 충분히 빠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자금이 부동산시장에 몰리면 또 다른 거품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행장은 다만 "단기자금이 한꺼번에 몰리면 자산거품 가능성이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지 얼마 안됐고 부동산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자금이 과도하게 몰릴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견해를 달리했다.

은행장들은 현재 연 2.0%인 기준금리 수준은 적절하며 이 같은 저금리 기조는 당분간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행장은 "과거 일본은 경기가 확실히 살아나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를 인상해 다시 침체로 빠져든 사례가 있다"며 "현 시점에서 금리인상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행장도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회복이 좀 더 분명해질 때 신중하게 점차적으로 인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상 검토 시기에 대해 김 행장은 2010년 상반기,윤 행장은 내년 이후,강 행장은 올 연말 이후,이백순 행장은 올 연말 혹은 2010년 초,이종휘 행장은 올 4분기 이후 등으로 제시했다.

◆구조조정에 박차 가해야

은행장들은 본격적인 구조조정 작업은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백순 행장은 이에 대해 "기업 구조조정 추진은 신속하고 고강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지고 민과 관의 상생모델이 만들어지면 고강도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휘 행장은 "지금은 기업의 체질이 강화돼 구조조정도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은행에서 냉철히 판단하고 과감하게 옥석을 가리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 행장은 "구조조정은 일회성이 아닌 상시적 체계를 만들어야 건전성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동/김인식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