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증시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코스피지수가 1400선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장외 돌발 변수가 발생한 만큼 단기적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적극적인 주식 매수로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외국인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들이 관망세로 전환할 경우 주가 조정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과거 대형 사건 발생 이후 증시가 거의 휘둘리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영향력이 단기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 "정치변수는 연결고리 약해"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증시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사회적으로 사상 초유의 대형 사건이기는 하지만 이번 일과 증시의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판단에서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들어 국내 주가는 국제 금융 시장의 동향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 국내 사회적 사건의 영향은 받지 않고 있다"며 "이번 일이 주가에 큰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과거에도 경제 분야 외의 대형 사건이 증시 등락을 결정짓지는 못했다.

지난달 5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지만 다음날 코스피지수는 되레 올라 1주일간 3%가량 상승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던 2004년 3월12일에는 코스피지수가 하락했지만 다음날 바로 반등했고 일주일 동안 3% 이상 상승했다. 대형 정치적 사건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일주일 내 소멸한 셈이다.

또 작년 5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계속된 광우병 촛불집회도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으며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이나 1987년 6월 항쟁도 주가 등락의 변수가 되지는 못했다.

올 들어 국내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외국인도 이번 일로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재원 ABN암로증권 부대표는 "외국인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 사안으로 국한하고 있어 이번 일로 한국 주식 매수를 줄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국내 증시의 첫 개장일인 25일이 미국과 영국 증시의 휴장일인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사회적 갈등으로 확대되면 외국인의 투자동향이 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임정석 NH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번 이슈가 노동자들의 파업과 맞물리면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다우지수가 나흘 연속 하락하고 있고 최근 아시아 증시가 맥을 못 추고 있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임 팀장은 "이달 들어 외국인의 매수세가 약해지고 있는데 이번 일로 관망하려는 심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효과 약해질 가능성도

국회에 계류 중인 미디어법이나 금융지주회사법 통과가 늦어져 개별 종목의 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원은 "이번 일로 여야 간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법안이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며 "이로 인해 관련 테마주들의 주가가 상승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 정책인 4대강 개발이나 녹색 성장과 관련된 기업의 주가도 중장기적으로 이번 사건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이번 일이 다음 달로 예상되고 있는 국내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결정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심재엽 메리츠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정부가 공매도 규제를 포함해 각종 규제를 풀고 있지만 정치적 리스크가 커지면 외국인이 한국 투자를 늘릴 요인이 사라진다"며 "결국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지는 정부의 대응에 달려 있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정파나 국민 간의 갈등을 잘 수습하면 과거 사례에서 보듯 큰 영향없이 끌날 수 있다는 얘기다.

류 연구원은 "외국인은 우리나라의 정치사회 환경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실적을 보고 투자하고 있다"며 "현 정부가 융통성있게 대처하면 이번 일이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인설/박해영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