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에 취하기는 처음이다. 이처럼 진한 핏빛 노을을 만난 기억이 없다. 먼 수평선의 경계에서 한껏 부풀어 오른 태양의 뜨거운 입김에 파랗던 하늘이 와인 레드로 벌겋게 달아오른다. 곧장 달려온 황금빛 너울은 이내 산산이 부서진 빛의 화살이 되어 사방팔방 깊숙이 꽂힌다. 눈처럼 하얀 해변의 모래사장도,두손을 꼭잡은 연인의 앳된 얼굴도,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이곳에만 자생한다는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도 하릴없이 그 노을에 포로가 된다. 서호주 북부의 작은 해안마을 브룸.주민이래야 1만5000명뿐인 브룸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케이블비치의 노을풍경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TAKE 1 로벅베이 '달로 가는 계단'

케이블비치의 노을풍경은 낙타가 어울려 더 독특하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일몰시간에 맞춰 진행되는 낙타타기 프로그램이 있는 것.사막이 아닌 바다와 낙타라는 조금은 생소한 조합이 정말 근사한 노을풍경에 방점을 찍는다. 낙타행렬은 노을이 절정에 이르기 1시간 전쯤 케이블비치클럽리조트 앞 해변에서 출발한다. 반환점을 찍고 최고의 노을풍경 속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한 마리에 두 명씩 타는 12마리가량의 낙타행렬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긴다. 때로는 바닷물에 그 넓적한 네 발을 적시며 우주공간을 유영하듯 움직인다. 어느 왕궁의 근위병처럼 긴 목을 꼿꼿이 세운 모습이 도도해 보인다. 케이블비치의 모래사장은 무려 22㎞나 뻗어 있는데 4륜구동 지프가 거침없이 달릴 정도로 단단하다. 경비행기가 내려도 될 것 같다. 낙타의 걸음걸음이 단단해 보이는 이유다. 인터컨티넨털호텔을 중심으로 북쪽은 은밀한 누드비치이며,남쪽은 수영과 윈드서핑 등으로 활기찬 해변이다.

북쪽으로 향하던 낙타행렬은 하늘이 선홍빛으로 물들 무렵 반환점을 돈다. 그리고는 점점 짙어지는 핏빛 노을 속으로 들어선다.

멀리 커다란 돛을 펴고 떠있는 요트 그리고 와인 레드로 물든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선명한 낙타행렬의 실루엣이 한폭의 그림 같다.

브룸을 여행하는 이유는 케이블비치의 노을풍경 외에 하나 더 있다. '달(月)로 가는 계단'이란 현상이 그것이다. 케이블비치 반대편 로벅베이 개펄의 간조 때 보름달이 뜨면 개펄의 모습이 달로 향하는 계단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말한다. 달로 가는 계단은 3월부터 10월까지 매월 보름을 전후한 사흘만 그 하이라이트를 구경할 수 있다. 달이 뜨고 정확하게 15분 동안만 유지되기 때문에 남다른 프로포즈를 하려는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TAKE 2 은빛 찬란한 진주의 고향

브룸은 진주로도 유명한 곳이다. 원래 진주잡이 및 수출항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1861년 대형 진주조개가 발견된 이래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중동 등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914년 전까지 브룸은 전 세계 진주조개(자개)의 80%를 공급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진주조개잡이 배만 400척이나 됐고 주민은 4만명을 헤아렸다. 현재 브룸은 전 세계 진주의 2%를 공급하고 있는데 고급진주 시장에서는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양보다 질로 승부한다는 뜻이다.

진주양식장을 구경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진주양식장은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윌리크리크농장은 진주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진주에 대해 설명을 듣고 보트를 타고 나가 진주양식장을 둘러보는 것.진주양식장에 경비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놀랍다.

그러나 남모르는 경비원이 있기는 하다. 바로 이 일대 바다에 서식하는 악어다. 일본인 잠수부들이 묻혀 있는 묘지도 관광코스 중 하나다.

브룸 시내의 차이나타운에는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야외극장'이 있다.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선 픽처스 야외영화관이다. 별빛 쏟아지는 야외에서 보는 영화의 재미는 과연 어떨까. 입장료가 16달러로 좀 비싼편이긴 하다.

브룸(서호주)=글·사진 김재일기자 kjil@hankyung.com

여행TIP

서호주는 호주에서 제일 큰 주다. 호주대륙 서쪽 3분의 1을 차지한다. 인구는 아주 적어 200만명밖에 안된다. 대부분의 도시가 인도양을 바라보는 해안가에 자리해 있다. 도시경계 바깥쪽은 호주의 오지인 아웃백이 펼쳐져 있다. 주도는 150만명이 사는 퍼스.한국보다 1시간 늦다. 현금매입기준 1호주달러에 980원 선.

브룸은 서호주 북부 해안도시다. 서울에서 브룸까지 직항편은 없다. 보통 캐세이패시픽항공(02-311-2800, www.cathaypacific.com/kr)을 타고 홍콩을 경유해 퍼스로 들어간 다음 브룸행 국내선을 탄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의 서울~홍콩~퍼스 연결편이 매일 다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면 시드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건기인 5~10월이 여행하기 좋다.

브룸의 숙박시설로는 공항에 전용데스크를 두고 있는 케이블비치클럽리조트(www.cablebeachclub.com)를 알아준다. 맹그로브호텔(www.mangrovehotel.com.au)은 '달로 가는 계단' 현상을 구경하기 좋다. 브룸카멜사파리(www.broomecamelsafaris.com.au)를 통해 케이블비치 낙타유람을 즐길 수 있다. 서호주정부관광청 (02)6351-5156,// kr.westernaustral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