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정치권과 여론 일각에서 '검찰 책임론'이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은 공식 반응을 자제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초유의 사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신중론과 그동안의 수사 방식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론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25일 오전 11시20분께 문성우 차장,한명관 기획조정실장 등과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시종 침통한 표정의 임 총장은 공동장의위원장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악수하고 영정 앞에서 묵념한 뒤 서둘러 분향소를 떠났다. 임 총장은 거취 문제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김경한 법무장관을 비롯한 법무부 실 · 국장급 간부 전원도 이날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임 총장은 이날 정기 주례 간부회의를 취소하고 서면보고로 대체하는 등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임 총장 등 검찰 수뇌부가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자 청와대가 이를 공식 부인하는 등 임 총장의 거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 수뇌부의 사의 표명설은 검찰 주변에서 나올지는 몰라도 청와대에 사의를 전해온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당한 법 집행이라면 여론에 밀려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 역시 "수사 과정상에 문제가 있었을 수는 있지만 수사는 검찰 본연의 임무인 만큼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사태를 차분하게 봐야 한다"며 "잘잘못을 제대로 따지지도 않은 채 떠밀리는 식으로 검찰 수뇌부가 사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검찰 일각에서는 임 총장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마무리한 후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는 형식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분위기다. 뇌물 수수 혐의사실이 포착됨에 따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수사였음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결과적으로 전직 대통령의 투신 서거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데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하며 자진 사퇴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그동안의 수사방식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론도 검찰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수사기간이 지나치게 늘어지고,확정되지 않은 혐의사실이 언론에 계속 보도되면서 임 총장이 그토록 강조해 왔던 '절제와 품격 있는 수사'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비판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이날 여의도 당직자회의에서 "검찰 조사가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거나,투망(投網)식으로 되거나,장기간 연장됨으로써 불행을 초래한 원인이 됐다면 이 부분은 규명돼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검 중수부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공식 브리핑을 전면 중단했다. 한때 '패닉'상태에 빠졌던 중수부는 그러나 사태 수습에 만전을 기하기로 의견을 모으고,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 이후 박연차 게이트의 남은 수사를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