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 비보를 접하는 찰나 심장이 펄떡이고 사고가 딱 멎는 느낌이었다.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서 나라 전체의 불행이다.

다 알다시피 노 전 대통령은 재임 때 가족이 후원자에게서 받아서 쓴 돈 때문에 포괄적 뇌물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가족들이 조사를 받고,측근들이 구속됐다. 원칙과 소신,도덕성은 노무현 정치의 가장 큰 자산인데 그게 휴지조각으로 날아가는 상황에 처해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은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는 유서 한 줄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고통과 절망은 목숨과 견주어도 그 무게가 작지 않았다.

누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검찰도 아니요,이명박 정부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의 뺄셈 정치라는 나쁜 정치 유산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 나쁜 정치 유산의 상속자이자 피해자다.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하야와 망명,시해,유배와 수감 등으로 줄줄이 험한 말로를 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다르고 마땅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임기를 끝낸 뒤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환경운동을 하며 여생을 보내겠다고 했을 때 전직 대통령들이 겪은 불행한 계보는 이제 끝나는구나 믿었던 터라 토요일 아침 날아든 이 비보가 더 놀랍고 비통했다. '막장' 같은 기성 정치의 강고한 벽을 넘어 뜻있는 정치 실험을 펼쳤던 그가 결국 죽음으로 내몰린 이 현실은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불행이며 비극이다.

검찰의 수사는 강하며 또 지루하게 이어졌다. 관점에 따라선 권력을 쥔 '현직'이 힘없는 '전직'을 궁지로 몰아세웠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겠다. 그래서 힘을 가진 '현직'의 관용과 배려가 더 필요했었다는 동정론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이제 소용없게 됐고 또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진보와 보수,좌와 우를 따지지 말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애도의 시간이다. 그런데 봉하마을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빈소를 찾은 한나라당 의원이 일부 노사모 회원들과 주민들에게 제지당했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상가에 오는 손님을 막는 법은 없다"고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누군가 보낸 조화는 부서졌다. 누구는 물벼락을 맞거나 험한 욕설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조문 하러 빈소를 찾은 손님을 막는 야박한 행위는 노 전 대통령을 욕되게 만드는 일이다. 격앙된 감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된다. 그가 남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라는 글귀에 담긴 고갱이가 무엇인가를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정부가 장례를 국민장으로 하겠다고 결정한 일은 잘한 일이다. 장례는 예를 다해 치러야 하고,유족과 지지자들의 상심과 아픔을 감싸안아야 한다. 그 다음에 남겨진 과제들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죽은 자의 장사는 죽은 자에게,산 자의 일은 산 자들이 풀어야 하는 법이다.

조금만 더 냉정해지자.무엇보다 편가르기,분열,복수의 악순환이라는 뺄셈의 정치를 하루빨리 덧셈의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과거지향적이고,비생산적이며,도무지 타협과 관용은 모르고,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독선과 아집이 판치는 게 뺄셈의 정치다. 미래지향적이고,생산적인 대화를 하고,타협과 관용 정신으로 포용하며,합리성과 원칙에 따르는 게 덧셈의 정치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뺄셈의 정치는 나라를 혼란과 분열로 몰아가고,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우리가 선택할 길은 분명하다. 뺄셈의 정치를 버리고 화합하고 관용하는 덧셈의 정치가 선택하고 가야 할 길이다.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