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도 유달처럼 결벽증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끔 본다. 모임에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으면서도 '위생 제일주의'를 고수한다. 심한 경우 외출하기를 꺼리거나 사람 만나는 것까지 기피하는 '병(病)'으로 진전되는 수도 있다.
사는 게 넉넉해지면서 결벽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웬만큼은 위생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위생에 너무 철저하다 보면 오히려 병에 취약해 질 수도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후진국 병인 A형 간염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A형 간염 환자 수는 2002년만 해도 224명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7895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이달 15일까지 이미 4231명이 감염됐다. 최근 한 고등학교에서는 13명이 한꺼번에 걸리기도 했다.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전격성A형 간염 환자도 올 들어 20여명이나 발생했고 그 가운데 5명은 목숨을 잃었다.
A형 간염이 생기는 이유가 특이하다. 위생적으로 살아온 탓에 몸 안에 항체가 없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란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위생관념이 희박했던데다 상 · 하수도 시설조차 잘 갖춰지지 않아 어릴 때(0~5세) A형 간염을 앓는 경우가 흔했다. 그 나이 때는 A형 간염에 걸려도 감기 정도의 가벼운 증상만으로 넘어가면서 면역이 생긴다. 반면 성인이 돼서 걸리면 심한 고열 · 복통 · 황달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물론 전격성A형 간염으로 악화될 우려도 높아진다. 위생상태 개선이 병이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질병이 A형 간염에 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면역을 생기게 하기 위해 일부러 비위생적으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손 자주 씻기 같은 기본 위생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병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위생의 역설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