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과거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족속입니다. 그들은 너무 빨리 아문 상처들을 열어젖히고,입구를 봉해놓은 지하실에서 시체를 발굴해내고,금지된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금단의 음식을 먹어치웁니다. 그들의 가장 나쁜 잘못은 패배자들이 서 있던 변두리를 즐겨 서성거리면서,패배자들이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내막 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수상연설 일부)

노벨문학상은 1901년 첫 수상자를 낸 이래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많은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은 큰 영광이며,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그래서 문인들은 스웨덴 한림원에서의 수상연설에 혼신을 다해 공력을 쏟아붓는다. 수상연설은 단순히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사상과 문학관을 전 세계에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여행가방》(이영구 외 옮김,문학동네)은 르 클레지오,오르한 파묵,가오싱젠,주제 사라마구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 11명의 수상연설을 모은 책이다. 이들의 수상연설은 유려한 한 편의 '작품'이자 생각의 집약체다.

《내 이름은 빨강》 등의 작품으로 2006년 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집필 과정을 '바늘로 우물 파기'에 비유하면서 "작가라는 직업의 비밀은 어디서 오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영감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에 있다"고 말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포르투갈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는 자신이 창조해낸 문학 앞에서 겸손하게 몸을 굽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삶의 고단함을 정말 열심히 가르쳐줬던 스승들,바로 종이와 잉크로 된 남자와 여자,바로 자신을 움직이는 팽팽한 줄과 무게 외에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제 마음대로 움직였다고 믿은 그 사람들을 이제야 볼 수 있습니다. "

알베르 카뮈는 현실 참여 전력을 가진 작가답게 연설문에서 예술과 작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작가는 오늘날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겪는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외톨이가 되어 자신의 예술을 잃게 될 것입니다. 독재가 거느리는 수백만의 그 모든 군대조차도 작가를 고독에서 구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연설문마다 작가에 대한 짧은 설명이 붙어 있다. 주제 사라마구는 출생신고 때 실수로 '소우자'라는 원래 성 대신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먹던 풀을 가리키는 '사라마구'라는 성을 받게 되었다는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