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김해 봉하마을에 차려진 지 나흘째인 26일 현재까지 한나라당 당적(黨籍)을 가진 현역 국회의원 중 현지 조문에 성공한 이는 단 3명뿐이다.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전 정책위 의장)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는 24일 새벽 봉하마을 빈소를 찾아 의외로 평온하게 참배하고 돌아갔다. 이어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 동행한 김광림 한나라당 의원이 조문에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이 다른 참여정부 시절 각료들과 함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봉하마을로 가는 길목에선 일부 인사들이 다분히 '인민재판 방식'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을 막아세우고 있었다. 유족과 친노 측 인사들은 공식적으로 모든 이의 조문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일부 열성 지지자들이 앞장서 참배가 가능한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을 가르고 있는 것이다.

일단 검은색 차량에 탄 정 · 관계 인사라면 무조건 마을 입구 차량 통제선에서 하차해야 한다. 마을까지 걷는 동안 '조문 저지조(?)'가 정치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 아는 얼굴이고 현 정권 인사다 싶으면 "막아섭시다"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주변의 다른 조문객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물벼락과 욕설을 듣고 끝내 발길을 돌렸다.

그런가 하면 야권 인사인데도 노 전 대통령과 구원(舊怨)이 있거나 악연을 맺은 이들은 대부분 참배는 했지만 '조문 저지조' 앞을 곱게 통과하지는 못했다. 한 번 돌아갔다가 되돌아와 조문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나 욕설을 뒤로 하고 빈소로 들어간 추미애 의원 등이 그런 경우다.

이렇게 저렇게 다 빼고 나면 결국 현역 정치인 중 봉하마을에서 환영받은 이는 일부 친노 · 386인사밖에 남지 않는다. 과거 여야를 막론하고 주류로부터 환대받지 못했던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제는 그를 박대하던 이들이 수모를 당하고 있다. 굳이 고인의 유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노 전 대통령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지자라면 추모하는 일에서까지 '뺄셈의 정치'를 되돌려주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차기현 정치부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