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8시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이자 정치 스승으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71)를 만나기 위해 경남 밀양시 용전마을의 자택을 찾았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한참이나 걸어들어가서야 낮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기와집에 닿을 수 있었다. 집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문밖에서 "신부님"하고 불렀다. 인기척에 문을 열고 나온 송 신부가 "기자인가 본데 언론인은 집에 들이지 않는다"며 단호한 목소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도 차는 한 잔 주셔야지요"라며 버티자 송 신부는 뜻밖에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래 먼 길 왔으니 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집 안에 들어서니 거실 소파에는 또 다른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박형규 목사(86)와 법타 스님(63)이었다. 송 신부와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1982년 부산에서 인권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깊은 인연을 맺어온 천주교와 기독교,불교의 원로들이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TV 뉴스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송 신부는 거실에 들어선 기자의 구멍난 양말을 발견하고는 "기자 양말에 구멍이 나서야 쓰겠냐"며 방으로 들어가 새 양말 한 켤레를 가져다주었다. 기자가 "사흘째 밖에서 생활하다보니 양말을 갈아신지 못했다"며 민망해하자 법타 스님이 "구멍이 나야 발도 숨을 쉴 거 아니냐"고 말해 방안에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뜻밖의 불청객이 몰고온 방안의 어색함을 일순간에 날려보낸 유머였다.

송 신부는 직접 부엌에서 술병과 잔을 가져와 기자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비록 불청객이지만 집 안에 들인 손님은 따뜻하게 맞아야 한다며 안주도 몸소 챙겨주었다. 식혜와 마른안주를 챙겨온 송 신부는 "냉장고에 과일도 있으니 배고프면 챙겨다 먹으라"고 마음을 써주었다.

TV에서는 북한의 핵실험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법타 스님이 농담조로 "그냥 조포라고 생각하자"고 하자 박 목사가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네"라고 받았다. 송 신부는 "일부러 (시기를) 맞췄겠나. 준비를 하는 시간도 얼만데"라고 말했다. 박 목사가 "나는 개성은 가봤는데 평양은 가봐야지 하면서도 못 가봤어"라고 하자 송 신부가 "나는 평양에 네 번인가 갔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 중에 한 명에게 '백성을 굶기는 게 정치냐'고 하니까 그 사람도 작은 목소리로 '군부 때문'이라고 하더라"며 방북 경험을 들려줬다.

이어 전국 200여 곳에 분향소가 차려졌고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노 전 대통령으로 옮겨갔다. 법타 스님이 기자에게 "왜 저렇게 사람들이 분향소에 몰리는 줄 아나"라고 물었다. 법타 스님은 기자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혼잣말처럼 "그래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서 그런거다. 노 전 대통령을 저렇게 많이 좋아하고 기억하고 있구나"라며 탄식하자 박 목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송 신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박 목사는 "노 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같이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며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 세력이 참 어려운 시기에 함께 해줬고,마지막까지 그 어려움을 다 끌어안고 갔다"고 애통해하자 송 신부와 박 목사가 앞에 높인 잔을 들었다. 이들은 찻잔과 술잔을 들고 "노 전 대통령을 위하여"를 나지막이 되내이며 잔을 부딪쳤다. 송 신부는 "1년3개월 전 고향으로 돌아와 죽마고우들과 오순도순 촌부처럼 살던 그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무엇이 급해 그토록 서둘러 떠났는지…"라며 애석해 했다.

박 목사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비리혐의로 검찰에 소환될 때 느낀 자괴감과 친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아내와 자녀들까지 검찰에 불려갈 때 느낀 참담함은 얼마나 컸을까 생각해봐야 한다"며 원망하기도 했다.

TV에서 한나라당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이 조문을 거절당한채 발길을 돌리고,일부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물병세례 등을 받는 뉴스 장면이 나오자 송 신부는 "조문은 하게 해야지…"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뒤 "이 땅에서 악순환되어온 정치권력의 보복 행위가 왜 끊어져야 하는지를 저걸 보며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타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의 화환이 일부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 의해 짓밟힌데 대해 "청와대서 화환을 보냈으면 되는 거지,망가지든 말든 큰 상관이 있나. 조문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야"라고 거들었다.

뉴스가 끝나자 송 신부는 방으로 들어가 오래된 앨범 두 권을 꺼내왔다. 앨범 한 권에는 송 신부와 노 전 대통령이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며 부산 거리를 누비던 흑백 사진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법타 스님이 "이게 노 전 대통령이다"라며 한 사진을 가리켰다. 사진 속에는 젊은 노 전 대통령과 송 신부가 '노태우 퇴진'이 적힌 띠를 두르고 길거리에 앉아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송 신부는 그 사진을 보며 "그때는 민주화를 위한 일념으로 참 열심히 했다"라는 짧은 말과 함께 천장을 바라보았다. 법타 스님이 "그때는 둘 다 젊었네.머리도 검고.이제는 머리가 다 하얗게 셌는데 말이야"라며 사진을 눈앞으로 당겨 자세히 쳐다봤다.

90년대 컬러사진들이 담긴 다른 앨범에는 노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뛰어든 시절의 사진들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학생들과 민주화에 대해 토론을 하고,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고, 권양숙 여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에서 정치적 동지들을 만나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세 사람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당시 사진들을 쓰다듬 듯 만지며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TV 뉴스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송 신부와 박 목사,법타 스님은 그 모습을 보며 깊은 회한에 잠기는 듯했다. 송 신부는 "노 전 대통령의 가식없는 웃음과 소탈했던 대화를 국민들이 오랫동안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 신부는 TV를 끄고 조용한 음악을 틀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술잔과 찻잔이 오고갔다. 그러고도 한참 시간이 흘렀다. 송 신부가 "늙은이들은 일찍 자야 되는데 기자들도 여기서 자고 가라"며 마루 한켠을 내줬다. 괜히 폐만 끼칠 것 같아 "봉하마을에 다시 들어가봐야 될 것 같다"고 사양하자 송 신부는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불러줬다. 다함께 마지막 잔을 나누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박 목사와 법타 스님은 "이것도 인연인데 명함이나 주고 가라.서울에서 다시 한번 보자"며 악수를 청했다.

직접 대문까지 나와 배웅을 하는 송 신부에게 "내일도 봉하마을 분향소에 나가시냐"고 묻자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야 되지 않겠냐.매일 나갈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음에는 웃으면서 보자"는 송 신부의 인사를 뒤로 하고 짙은 어둠이 깔린 마을길을 내려왔다.

밀양=서보미/김일규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