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29)는 1년 전 취업과 함께 월 80만원을 넣는 은행 적금에 3년 만기로 가입했다. 1년에 1000만원씩을 모아 3년 만에 3000만원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이씨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근무지가 바뀌면서 전셋집을 옮기기로 했는데 전세금이 모자라 적금을 중도에 해지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이씨의 경우는 저축을 통해 목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사례다. 전세금은 나중에 되돌려받는 것이어서 추가액만큼 목돈이 불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계획한 목돈 마련에는 실패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돈을 용도에 따라 나눠서 별도 계좌로 관리하는 '통장 쪼개기'를 검토해볼 만하다고 권한다. 적금 외에 전세금 용도의 자금이나 긴급한 상황에 쓰기 위한 예비자금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면 1년간 넣던 적금을 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통장 쪼개기는 단기간에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재테크 기법은 아니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계획성 있게 돈을 모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올해 초 출간돼 주요 서점에서 재테크 분야 베스트셀러가 된 '4개의 통장'의 저자 고경호씨(36)로부터 통장 쪼개기의 실전 전략을 들어봤다. 고씨는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로 우리투자증권 알리안츠생명 등에서 일하다 최근 재무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월급 받으면 4개 통장으로 분산

고씨는 급여통장 이외에 소비통장 예비통장 투자통장을 만들 것을 권했다. 고씨는 "통장 쪼개기는 수입에서부터 지출과 투자에 이르는 돈의 흐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라며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관리하면서 재무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급여통장은 월급을 받아 각종 공과금 등 고정적인 지출을 자동이체하는 역할을 맡는다. 자동이체일은 급여를 받는 날로부터 5일 이내에 집중시키는 것이 좋다.

소비통장은 고정 지출을 제외한 소비성 지출을 위한 돈을 넣어두는 통장이다. 각종 고정 지출의 자동이체가 끝난 다음 날 일정액을 소비통장으로 넘긴다. 급여통장의 잔액을 모두 소비통장으로 보내지 않는 것은 소비성 지출을 일정 한도 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다.

급여통장에서 고정 지출이 빠져나가고 소비통장으로 생활비를 자동이체한 다음에 남는 돈은 전부 투자통장으로 옮긴다. 적금 펀드 변액연금보험 등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가 투자통장에서 시작된다. 이때 각종 금융상품의 자동이체일 전에 급여통장에서 투자통장으로 돈이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액연금보험 같은 저축성 보험은 보험료가 2회 이상 미납되면 실효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만약 한 달 후 소비통장이나 투자통장에 잔액이 남아 있다면 전부 예비통장으로 옮겨 비상자금으로 관리한다. 비상자금은 실직이나 이직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소득이 감소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하다. 고가의 전자제품을 구입한다든지 하는 통상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지출도 예비통장 잔액으로 충당한다.

고씨는 "월 평균 지출액의 3배 이상을 예비자금으로 확보해 둬야 비상시에 대비할 수 있다"며 "예비자금을 써야 할 일이 생겼다면 이후 몇 달 간 소비를 줄여서라도 다시 원래 수준의 예비자금을 채워넣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투자통장은 목적에 따라 세분

급여통장을 4개로 나눴다면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일이 남았다. 고씨는 먼저 필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와 기타 목적의 투자로 나눠 보라고 말했다. 결혼자금,주택마련자금,자녀교육을 위한 자금 등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돈을 우선적으로 모으고 그런 다음에도 남는 돈이 있다면 재산 증식 자체를 위한 투자를 시도하라는 것이다.

그는 "노후생활을 위한 돈과 자녀의 대학 교육을 위한 돈은 세금을 낸다는 생각으로 매달 일정액씩 투자하고 있다"며 "노후자금은 연금보험,자녀 학자금은 인덱스펀드로 모으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금이 필요한 시기에 따라 단기,중기,장기로 구분해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때 만기 1~3년의 단기 투자는 주식형펀드 등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상품을,7년 이상의 장기 상품은 장기주택마련저축이나 연금보험 등 안정성을 기할 수 있는 상품을 활용한다.

단기 투자라고 하더라도 결혼자금이나 자동차 구입용 자금과 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은행 적금과 같은 확정형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1년 이내에 써야 할 돈은 CMA 머니마켓펀드(MMF) 수시입출식예금(MMDA) 등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상품에 넣어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