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언더우드 집안을 기억하고 사랑해 주는 게 제겐 가장 큰 선물이죠."

올해로 언더우드 선교사 탄생 150주년을 맞는 피터 언더우드(54)는 "할아버지,아버지가 한국을 위해 활동한 것에 대한 보답을 내가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언더우드 집안의 4대손 중 유일하게 한국에 남아 있다.

대한제국 말 교육,문화,육영사업을 펼치며 한국 근대화에 기여한 언더우드가의 인연은 2대 원한경,3대 원일한 박사에 이어 피터 언더우드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한국 이름은 원한석.아버지의 유학 중 뉴욕에서 태어나 3개월 만에 한국에 왔다. 이후 대학과 대학원 시절을 제외하면 줄곧 한국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자신의 고향을 서울,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른다.

"모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내 모국이 어디죠?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는데 어디로 돌아갑니까. "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외국인 취급 당하는 것 같아 서운할 때도 있다고 한다.

피터 언더우드는 선대와는 달리 비즈니스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것은 이제 별 의미가 없고,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다르게 살고 싶었다고 한다. "선조들이 한국의 선교와 교육 발전에 기여했다면 저는 비즈니스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거죠."

그는 올해로 21년째 한국계 컨설팅회사 IRC의 시니어 파트너 겸 미국 조지아주정부 한국사무소장을 맡고 있다. 기업 환경에 대해선 할 말도 많은 듯했다. "요즘 기업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많이 조성됐지만 아직도 부처별로 손발이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 노사문제도 따끔하게 지적했다. "강성 노조와 시위가 많은 나라란 이미지가 너무 강해요. 국내 기업도 투자를 꺼리는데 외국 기업이 오겠어요. 우리나라도 열심히 일하는 나라,패션이 앞선 나라,역사가 깊은 나라란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으면 좋겠어요. "

그가 미국 조지아주에 한국 기업을 진출시키려는 것은 '한국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조지아주는 섬유 농산물 자동차 항공기 통신 방위산업 등이 고르게 분포돼 있고,주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어서 한국 기업들이 사업하기 참 좋은 곳이에요. 특히 정보기술(IT)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실리콘밸리 못지않아요. "

은퇴 후 생활에 대해 그는 "호주 출신 아내가 나를 위해 한국에서 살아줬으니 나도 아내를 위해 호주에서 살아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내가 외국에 나가서 살게 된다면 그땐 분명 이민가는 기분이 들 것"이라며 웃었다.

한편 한국교회사학연구원과 한국기독교회사학회는 오는 30일 서울 한국교회사학연구원에서 '언더우드 선교사 탄생 15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연다.

글=최규술/사진=정동헌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