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구지레한 곳에서 내 책이 번역되어 나오는 것 바라지 않아요. 메이저급 언어라면 몰라도….그러니 그리 아세요. "

이 거만한 발언은 우리나라 유명 작가의 입에서 나왔다. 우리 정부의 국비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한 베트남 번역가는 박사 과정 틈틈이 국내 유명 작가의 소설을 베트남어로 번역했다. 이 원고를 현지 대형 출판사에 보냈더니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원작자에게 출판 허가를 받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한 것.

난감해진 베트남 번역가는 지난해 말 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성을 다하여 번역을 완료하였으며 더구나 출판까지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싶었던 권 교수는 직접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이 "메이저급 언어라면 몰라도 그런 구지레한 곳에서…"였단다. 이 기막힌 사연을 문학 월간지 <문학사상> 6월호에서 소개하며 권 교수는 "서양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읽어 주어야만 할 작품을 베트남과 같은 제3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인가?"라고 개탄했다. 권 교수는 또 "이런 작가가 한국문학을 대표한다면서 여기저기 나댄다. 요즘은 노벨상 운동한다는 소문도 있다"면서 번역가 앞에서 괜히 부끄러웠다고 전했다.

외국 출판사가 우리나라의 순수문학을 나서서 소개하고 싶다고 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대산문화재단이나 한국문학번역원 같은 기관이 번역가에게 번역비를 지급하고 해외 출판사에도 출판비를 일부 지원해야 우리 문학의 해외 진출길이 겨우 트인다. 그나마 우리 문학의 인지도가 낮아 열에 아홉은 초판이 다 팔릴동 말동이다. 한국문학을 이해하고 작품을 제대로 옮길 수 있는 원어민 번역가도 적어 쩔쩔매는 상황이다. 문제의 작가 말을 그대로 따오자면 우리야말로 참으로 '구지레한' 처지다.

문학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언어의 장벽은 엄연하다. 영어,프랑스어,중국어 등을 쓰는 문학작품에 비해 한국어 같은 소수언어권 문학에 그 장벽은 높은 게 현실이다. 그럴수록 우리 작가들은 더 고개를 숙여야 하지 않을까. 잠재 독자가 부르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외면하는 유명(?)작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고운 문화부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