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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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저고리 붉은 치마의 여인이 그네에 오른다. 여인 둘은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서 머리를 손질한다. 아래쪽 개천에선 속저고리 바람 혹은 아예 가슴을 드러내고 허벅지까지 치마를 걷어올린 여인들이 몸을 씻는다. 두 명의 사미승이 멀리 바위 뒤에서 이들을 훔쳐본다. '
'한 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발 밑에 가는 티끌 바람 좇아 펄펄.앞 뒤 점점 멀어지니 위에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흐늘흐늘 고고 갈 제,살펴보니 녹음 속에 홍상(紅裳) 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구만장천(九萬長天) 백운 간에 번갯불이 쐬이는 듯.'
앞의 것은 18세기 조선조 화가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에 담긴 모습,뒤의 것은 '열녀춘향 수절가' 중 단오날 그네 타는 춘향의 독백이다. 선인들의 삶을 드러내는 그림과 글에서 단오와 여인,특히 그네 타고 멱 감는 여인은 이처럼 같은 화면으로 다가선다.
보통 6월에 맞는 단오(음력 5월 5일)가 5월에 들었다. 단오는 조선시대엔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여겨졌다. 그도 그랬을 것이 홀수인 양(陽)의 수가 중복된 날(1월1일,3월3일,7월7일) 중에서도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로 꼽히는 데다 모내기가 막 끝나는 즈음이다.
집집마다 쑥떡과 수리취떡 앵두화채를 만들어 먹고 약쑥 익모초 찔레꽃 등을 따서 말렸다. 쑥으로 만든 호랑이를 문에 걸고 붉은 글씨의 부적을 문설주에 붙이기도 했다. 여인들은 창포 삶은 물로 머리 감고 남자들은 창포 뿌리를 잘라 허리에 찼다.
농경사회에서 단오는 남녀 할 것 없이 잠시 쉴 틈을 얻은 시기이자 덥고 습기찬 여름철에 대비해야 하는 때였을 것이다. 그러니 여인들은 그네와 목욕으로,남정네들은 씨름과 탈춤으로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고 여름에 행여나 돌지 모를 전염병도 막고 싶었을 게 틀림없다.
절기 탓일까. 5월인데도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돌 만큼 덥다. 단오에 주고 받던 부채(端午扇)로 바깥더위는 물론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비롯된 가슴 속 열기도 좀 식힐 일이다. 고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크다 해도 괜한 유언비어 등에 휘말리지 말고 차분하게 오늘을 살아내고 그럼으로써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고인이 진정 바라던 일일 터이기 때문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한 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발 밑에 가는 티끌 바람 좇아 펄펄.앞 뒤 점점 멀어지니 위에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흐늘흐늘 고고 갈 제,살펴보니 녹음 속에 홍상(紅裳) 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구만장천(九萬長天) 백운 간에 번갯불이 쐬이는 듯.'
앞의 것은 18세기 조선조 화가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에 담긴 모습,뒤의 것은 '열녀춘향 수절가' 중 단오날 그네 타는 춘향의 독백이다. 선인들의 삶을 드러내는 그림과 글에서 단오와 여인,특히 그네 타고 멱 감는 여인은 이처럼 같은 화면으로 다가선다.
보통 6월에 맞는 단오(음력 5월 5일)가 5월에 들었다. 단오는 조선시대엔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여겨졌다. 그도 그랬을 것이 홀수인 양(陽)의 수가 중복된 날(1월1일,3월3일,7월7일) 중에서도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로 꼽히는 데다 모내기가 막 끝나는 즈음이다.
집집마다 쑥떡과 수리취떡 앵두화채를 만들어 먹고 약쑥 익모초 찔레꽃 등을 따서 말렸다. 쑥으로 만든 호랑이를 문에 걸고 붉은 글씨의 부적을 문설주에 붙이기도 했다. 여인들은 창포 삶은 물로 머리 감고 남자들은 창포 뿌리를 잘라 허리에 찼다.
농경사회에서 단오는 남녀 할 것 없이 잠시 쉴 틈을 얻은 시기이자 덥고 습기찬 여름철에 대비해야 하는 때였을 것이다. 그러니 여인들은 그네와 목욕으로,남정네들은 씨름과 탈춤으로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고 여름에 행여나 돌지 모를 전염병도 막고 싶었을 게 틀림없다.
절기 탓일까. 5월인데도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돌 만큼 덥다. 단오에 주고 받던 부채(端午扇)로 바깥더위는 물론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비롯된 가슴 속 열기도 좀 식힐 일이다. 고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크다 해도 괜한 유언비어 등에 휘말리지 말고 차분하게 오늘을 살아내고 그럼으로써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고인이 진정 바라던 일일 터이기 때문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