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충격에 빠졌다. 끝없이 조문이 이어지는 것은 그의 면모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자책과 함께 갑작스러운 빈자리가 너무나 허전하기 때문은 아닐까. '있을 때 잘해' 라는 우스갯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GM대우의 라세티 프리미어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자동차 전문잡지에 몸 담고 있으면서 언제나 산업보다는 제품,즉 출시되는 차가 더 큰 관심사였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동차 산업보다는 실제로 나오는 차를 보면 그 메이커의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알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라세티 프리미어는 지난해 11월 데뷔했다. 이미 여러 모터쇼에서 컨셉트카로 소개되어 유명세를 치르고 있던 모델이긴 했지만,실제 한국 도로에서 타 보고 마주 대했을 때 느낌은 사뭇 달랐다.

이전 대우자동차를 기억하는가. 한때 한국 자동차 업계 2위를 차지했던 대우자동차는 자신들의 기술력을 키워 나가기보다는 해외 유명 디자인 업체의 디자인을 사왔고 엔진이나 파워트레인도 대외 의존도가 높았다. 때문에 겉모습은 그럴싸했지만 실내 디자인이나 품질,마무리 측면에서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우차를 좋아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시장 판매량은 정직했다. 대우차들은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웠고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런 기억을 갖고 있던 기자에게 라세티 프리미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뀌어도 180도로 바뀌었다. 이것은 대우자동차가 GM 산하로 들어갔지만,한국에 생산공장과 개발센터를 두고 '우리 차'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디자인과 기술 개발에 총력을 쏟아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라세티 프리미어의 디자인과 품질력만 두고 본다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당당한 모델이다. 외신에서는 GM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찬사를 늘어 놓는다. 감성뿐 아니라 안전도면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월 초 호주의 안전성 평가에서는 최고등급 별5개를 받았다. 그 평가에서 라세티 프리미어는 37점 만점에 35.04점을 기록,최근 수년간 평가 대상이었던 동급 차종 중 최고 점수를 보였다고 한다.

소비자들의 눈은 예상보다 매섭다. 라세티 프리미어를 내놓자마자 GM의 위기설이 불거져 나왔고 여파는 GM대우에까지 이르렀다.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세티 프리미어는 제법 잘 팔렸다. 한국 자동차 공업협회에서 발표한 1~4월 판매량을 보면 라세티 프리미어는 9674대가 판매됐다. GM대우 전체 승용차 판매 2만580대의 47%를 차지하는 수치다. 올해 국내에서 팔린 GM대우 승용차 2대 중 1대가 라세티 프리미어인 셈이다.

경기가 좋은 시절에 라세티 프리미어가 나왔으면 돌풍을 일으켰을 모델이다. 지금도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안개 속 정국처럼 라세티 프리미어를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문제점을 꿰뚫고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안목이 이제는 우리에게 있다. 라세티 프리미어가 GM대우 회생의 견인차 역할을 해내며 글로벌 준중형차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모터매거진 편집장 kino2002@motor-m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