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지식 남용이 전례 없는 경제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전 총리는 28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09' 기조연설에서 비관적인 미래를 전망했다.

◆디지털시대가 빈부 격차 키워…정부가 조정해야

마하티르 전 총리는 '디지털 시대의 신 세계질서'라는 연설문을 통해 "디지털시대가 결국 빈국과 부국의 격차를 키워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년 동안 디지털시대를 주도한 지식층은 매우 변덕스럽고 보상에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결과적으로 지식층이 빈국에서 부국으로 이동해 불균형한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현상이 지금의 전 세계적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간접적인 비판도 뒤따랐다.
모하마드 전 총리는 "최근 우리는 전례 없는 금융 및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며 "디지털 시대의 지식을 남용한 것이 부분적인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고의 인재들은 컴퓨터 기술만을 사용해 직접적인 물건의 생산과 노동 없이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금융시스템을 남용하고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며 "정부가 개입해서 법으로 다스리지 않는 한 디지털 시대는 잦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지털시대는 이미 문명의 수용범위를 능가했다는 주장이다.

◆'1984'의 통제된 시대 다시 올 수 있어

마하티르 전 총리는 "지금의 디지털화는 상당한 수준의 정확성을 자랑한다"며 "조지 오웰의 '1984'의 상황이 다시 연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오늘날에는 위성으로 고해상도의 사진을 찍어서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다"며 "이는 심각한 개인 사생활 침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이미 지문을 채취당하고, 신체를 스캔 당하며 GPS(위성항법장치)를 통해 통제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강대국들이 개인정보를 수집해 이들을 제압하고 통제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세계'는 아시아의 부상으로 새로 재편될 것

'아시아적 가치'의 대표적 주창자인 모하마드 전 총리는 미래에는 예전처럼 '유럽 중심적'이지는 않지만 영향력은 남아있을 것이며, 아시아의 부상으로 인해 중재가 이루어진 세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우리는 수세기 동안 유럽 중심의 세계에서 살아왔고, 이들이 벌인 전쟁에 끌려다녔다"고 전제하며 "그들처럼 막대한 군비를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부유해진 동양 국가들의 군사력과 세계 영향력은 서방 국가와 대등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동양과 서양의 대척은 세계 전체를 파괴할 수 있고 이것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또 "서양 지배는 유지될 수 없다"며 "유럽 강대국과 미국은 아시아의 부상에 의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재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양과 서양 사이, 또는 유럽인들과 나머지 인구 사이에 권력의 분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前 총리는=
지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총리로 재임하며 해외투자 유치와 조세 개혁, 무역장벽 축소,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말레이시아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민족 분쟁 해결에도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만 장기집권과 인권탄압, 일방적인 정책 강요에 대한 비판도 상존한다.

그는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 '반세계화'를 주창하며 국제통화기금(IMF)의 긴축재정 권고와 지원을 거절하고 고정환율제 채택, 외국자본 유출 금지 등 독자적인 조치로 눈길을 끌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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