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비맥주를 인수한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운용자산만 485억달러에 달하는 공룡 펀드다. 1976년 제롬 콜버그와 헨리 크래비스,조지 로버츠가 설립한 KKR는 세계적으로 48개의 기업을 운영하면서 85만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수익률은 연간 26%에 이른다.

KKR가 인수 · 합병(M&A)의 달인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1988년 식품업체 RJR 내비스코를 사상 최고가인 310억달러에 인수한 '사건'이었다. 20년 전 310억달러를 지금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77조원이나 된다. 지금이야 100억달러 이상의 대형 거래가 흔하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문 앞의 야만인들》은 전직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브라이언 버로와존 헤일러가 RJR 내비스코 인수 과정을 치밀하게 재구성한 책.지난해 미국에서 재출간된 20주년 기념판을 완역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당시 월스트리트를 뒤흔들었던 차입매수(LBO) 열풍을 해부하면서 M&A 전문가들의 기막힌 전략회의와 여론 조작,협상과 협박,사교 파티,입찰 전쟁 등을 한 편의 다큐드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보인다. 이들은 RJR 내비스코의 최고경영자 F 로스 존슨 등 주요 인물들을 100차례 이상 대면 인터뷰하고 구체적인 상황들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했다.

특히 금융계의 탐욕스런 하이에나들이 음모와 배신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마어마한 판돈이 놓인 잔칫상 앞에서 서로 많이 뜯어먹으려는 온갖 인간군상의 캐릭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크본드'를 기본적인 무기로 내세운 측이 있고 건전한 경제를 위해 이들과 성전을 벌이겠다는 측이 있다. 누가 이기든 이기는 쪽에 서고 싶다는 측도 있고,이기는 쪽에 섰지만 마지막 순간에 허를 찔린 측도 있다.

1980년대에 등장한 'LBO'는 인수 대상 기업을 담보로 빚을 내고 투자 회사들을 끌어 모아 그 회사를 산 뒤 단기성과를 목표로 한 구조조정을 거쳐 비싼 값에 되팔아 이익을 남기는 신종 기업사냥 기법.2000년대에 들어선 온갖 '파생 상품' 덕분에 자금 동원이 훨씬 쉬워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세계 경제는 복잡하게 뒤엉켰고 결국 미국발 금융 위기를 맞고 말았다.

'RJR 내비스코의 몰락'이라는 부제처럼 이 엄청난 인수 전쟁의 끝은 비극적이었다. "RJR 내비스코의 LBO 거래가 이뤄진 뒤로 이 거래와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쓰라린 고통만 당했다"는 스티븐 골드스톤 전 RJR 내비스코 최고경영자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저자들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사모펀드의 황금기가 끝이 났다고 말하면서도 "야만인들은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자기들이 입은 상처를 닦으면서 한 번 더 문을 박차고 들어올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경고한다.

이 책은 2007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가 전 세계 정상급 CEO와 경제 전문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역사상 최고의 경제경영 도서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