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후 한창 세례를 주고 있는데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세례를 받기 위해 나타났다. 방금 나무 밑에서 출산한 아기였다. '에구머니나! 성탄절 미사 중에 그것도 성당 안에서 웬 출산이람! 태어난 지 채 5분도 안 됐는데,식기 전에 세례를?!"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톤즈 마을에서 8년 동안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46)의 경험담이다.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뒤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가 2001년 사제품을 받은 이 신부는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에서 의사로,선교사로,교사로 봉사하며 겪은 아프리카 이야기를 이처럼 생생하고 정감 있게 들려준다.

이 신부가 수단 선교사로 처음 간 것은 1999년 여름방학 때였다.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손가락 · 발가락 없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나환자들,비쩍 마른 엄마 젖을 빨다 지쳐 울어대는 아이들….악성 말라리아,콜레라가 만연하고 아이들은 학교가 없어 동네를 빈둥거렸다.

이 신부는 무모하게 도전했다. 나무그늘에서 시작한 학교가 1년 뒤엔 움막으로,그 다음엔 벽이 있는 건물로 발전했다.

간이성당과 병원의 환자대기실을 아이들의 야간학습실로 써야 할 만큼 시설이 열악했지만 향학열은 대단했다. 아이들의 등쌀에 야간 학습시간을 저녁 9시에서 11시로 늘려야 했고,몇 년에 걸친 아이들의 성화 때문에 초등학교 창고건물에서 중 · 고교를 시작했다.

교사를 구하기 힘들어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이 신부는 "야간에 진료실에 앉아 가끔씩 오는 응급환자를 치료하거나 수학문제를 들고 오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의 소박한 즐거움이 됐다"고 전한다.

수단 아이들의 놀라운 재능도 발견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이들에게 피리와 기타,피아노를 가르치자 피리는 물론 기타를 배운 지 하루 이틀 만에 노래를 불러가며 연주하더라는 것.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오르간을 양손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년 전에 구성한 35인조 브라스밴드는 연습한 지 나흘 만에 첫 합주곡을 연주했을 정도였다.

결혼지참금 때문에 생긴 별난 여아선호 현상,전쟁이 만든 소년병들,자신의 여성성에 대해 무지한 여성들,중국의 쿵푸 영화를 흉내내는 아이들,콜레라 · 말라리아와의 전쟁 등 아프리카 생활상도 가감 없이 전해준다.

이 신부는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그 먼 곳까지 갔느냐는 질문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주며 가난하지만 맑은 눈을 가진 그들에게서 '은총'을 발견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