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지난 27일 중국 베이징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국무원 신문판공실.이곳을 찾은 민원인 중 몇 명이 갑자기 건물 벽면에 '환영 펠로시 의장''중국의 인권에 관심을' 등의 구호를 벽면에 쓰기 시작했다. 공안(경찰)이 뛰어오면서 구호를 적던 사람들은 흩어졌고,붉은 구호도 지워졌지만 "정부청사에서 시위가 벌어진 것은 놀라운 일(홍콩 명보)"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중국에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방중에 맞춰 이 같은 기습시위가 잦아지고 있다. 지난 25일에도 베이징 펑타이구 고등법원과 남역에서 1000여명이 두 시간가량 시위를 벌였다. 아마도 펠로시 의장이 초선의원이던 1991년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이를 위해'라는 피켓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던 전력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지난 24일부터 그녀가 중국에 머무는 8일 동안은 중국 인권문제가 핫 이슈가 될 것이란 기대도 높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권문제에 관해 입도 뻥끗하지 않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지난 2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인권문제는 주요 의제가 되지 못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금융위기의 와중에 전 세계에 구매단을 파견하며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미국의 조심스러운 행보가 그대로 드러난다.

최근 중국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오는 31일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다. 가이트너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 들어 처음이다. 부시 행정부 당시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중국을 찾을 때면 위안화 가치는 가파른 오름세를 탔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중국이 '알아서 기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고,이는 적어도 중국이 이젠 미국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강해진 중국 앞에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초강국으로 떠오른 기분에 취해 내부모순을 정당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톈안먼 사태 20주년이 다가오고 있어 더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6월4일을 앞두고 중국의 민권 운동가들에 대한 연행이 이뤄지고 있다는 홍콩 언론의 보도가 무겁게 느껴진다. 힘만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순 결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