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 IT(정보기술)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 온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위기에 몰렸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21.5%의 점유율로 13분기 연속 세계 시장 1위를 지켰고,LG전자는 13.3%의 점유율로 소니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지만 중국에서는 점유율이 급락세다. 현지 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향상된 데다 중국 중앙 및 지방정부의 '바이 차이나' 정책이 전자분야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탓이다.

LCD 패널 부문에서는 중국 정부의 후원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삼고 있는 대만 기업들이 한국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의 교역규모는 2006년 1079억달러에서 지난해 1292억달러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가전하향(家電下鄕)의 덫

중국 정부가 지난해 전자 제품을 구입하면 제품 가격의 13%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가전하향'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자 국내 전자업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 정책으로 전자제품 수요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매출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기왕 가전제품을 구입할 생각이라면 브랜드가 널리 알려져 있는 한국산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가격이 저렴한 제품으로 보조금 지급 대상을 한정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매출만 늘어났던 것.업계 관계자는 "30~40% 정도였던 범용 제품과 고급 제품의 가격차이가 가전하향 정책으로 인해 두 배로 벌어졌다"며 "브랜드보다 가격을 우선시한 중국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제품을 외면하면서 한국 기업이 오히려 손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보낼 물량 없어요"

국내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업체들은 중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과 관련,당장 반격의 카드를 내놓기는 힘든 상황이다. 지난 1월부터 전 세계 LCD 패널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공급 물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려면 일정량 이상의 패널 물량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며 "공장을 풀가동해도 수요를 대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한국산=고급' 이미지를 전파하는 중 · 장기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중국 내 TV 보급률이 좀 더 높아지면 화질이 높은 제품을 선택하려는 트렌드가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삼성전자는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 열린 'CODE 2009' 디스플레이 전시회에 참가해 240Hz(초당 240장의 화면 구현) 고화질 패널과 광원(光源)으로 LED(발광다이오드)를 쓴 패널 등을 선보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올해부터 CODE 2009에 참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확산되는 '바이 차이나'

기왕이면 중국산을 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전자 이외의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다. 철강 분야에서는 파이프,건설용 자재 등을 중심으로 '중국산 애용운동'이 한창이다. 중국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중국산을 쓰자는 게 지방정부의 공식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쓰촨성 대지진 피해 복구 작업에도 중국산 철강재만 사용됐다"며 "중국으로 수출이 가능한 품목은 자동차 강판과 같은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뿐"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업계는 지난 3월 발표한 '자동차 하향' 정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농촌 지역의 노후 화물차와 오토바이를 교체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이 정책의 골자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50억위안(약 92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화물차와 오토바이를 만드는 현지 업체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둥펑 등 화물차와 승용차를 함께 만드는 업체들은 자동차 하향으로 번 돈을 승용차에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기업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형석/박민제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