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권 승계 논란 종지부] "CB 인수 포기는 주주 선택…경영진 잘못 아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대법, 에버랜드 CB발행 무죄 판결
"제3자 처분과정 배임 없었다" 못박아
"제3자 처분과정 배임 없었다" 못박아
대법원이 29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삼성그룹은 이로써 13년 동안 집요하게 발목을 잡았던 경영권 불법승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경영권 승계작업은 '합법'
삼성에버랜드의 CB 저가 발행으로 인한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에 대해 대법원이 이 전 회장과 허태학 · 박노빈 전 에버랜드 대표에 대해 최종 무죄판결을 내렸다. 1996년 10월 발행 이후 13년 동안 학계 ·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받았던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과정이 합법적이었음을 최종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으로 인한 배임 혐의로 기소된 허 · 박 전 에버랜드 대표에 대해 유죄선고를 한 원심을 6(파기환송) 대 5(상고기각)의 의견으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부는 마찬가지 사안에서 삼성특검이 배임 등으로 기소한 이 전 회장 등에 대해 무죄 취지의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배임에 대한 유 · 무죄를 판단할 핵심 쟁점으로 CB 발행이 △주주 배정방식인지 △제3자 배정방식인지를 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의견은 정반대로 엇갈렸다. 다수 의견을 낸 김지형 박일환 차한성 양창수 신영철 대법관은 CB 발행이 '제3자 배정방식'이 아닌 '주주 배정방식'이라고 규정하고 유죄 취지의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반면 반대 의견을 낸 김영란 박시환 이홍훈 김능환 전수안 대법관은 '제3자 배정방식'이라며 원심의 유죄취지를 인정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관이 "주주 배정 방식이든 제3자 배정방식이든 발행조건에서 주주에게 불이익이나 손해가 발생했다고 해도 회사에 대한 임무 위배가 없는 한 이사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별개 의견을 내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은 결국 무죄로 일단락됐다.
김지형 대법관 등은 다수 의견에서 "주주 배정방식과 제3자 배정방식을 구별하는 기준은 회사가 신주 등을 발행할 때 주주들에게 그들의 지분비율에 따라 신주 등을 우선 인수할 기회를 부여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며 "신주 등 인수권을 부여받은 주주들이 실제로 인수권을 행사해 신주 등을 배정받았는지 여부와는 관계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주주 회사들이 스스로 실권한 이상,주주 회사 지분비율에 변화가 생기고 기존 주주들의 부가 새 주주에게 이전돼 설사 불이익이 발생하더라도 기존 주주들의 '선택'일 뿐 경영진에 배임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부분에 대해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판결을 내린 삼성특검 항소심의 결정과도 맥을 같이 한다.
다수 의견은 이어 "CB를 주주 배정방식으로 발행하는 경우 주주가 인수권을 잃을 때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자유롭게 이를 제3자에게 처분할 수 있다"며 "실권된 CB부분에 대해 별도로 전환가액 등 발행조건을 변경해 발행할 여지가 없다"고 못박았다. 또 당시 이사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남매에게 CB를 넘기는 이사회의 결의 과정에서 어떤 흠이 있다고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영란 대법관 등 5인은 소수의견에서 "신주 발행가액을 현저히 저가로 발행하고 이것이 실권되는 경우에는 제3자 배정 발행방식과 마찬가지로 발행가액을 시가로 변경할 의무가 있다"며 "주주가 스스로 실권하고 실권주를 제3자에게 배정하는 것이 주주 배정방식이라는 것은 지나친 형식논리"라고 반박했다.
◆판결 엇갈린 재판
삼성 재판은 검찰이 애초 기소한 '허태학 · 박노빈 전 사장 사건'과 특검이 기소한 '이 전 회장 사건'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허 · 박 전 사장 사건'은 특검이 시작되기 전인 2007년 5월 이미 항소심 재판까지 끝냈지만 이 전 회장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에버랜드 CB를 저가 발행한 행위를 놓고 두 사건 하급심은 다르게 판단했다. '허 · 박 전 사장 사건'의 경우 1심 재판부는 에버랜드의 적정 주가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해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고,항소심 재판부는 적정 주가가 최소 1만4825원은 된다고 보고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 사건에서는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1심은 주주들이 스스로 실권,배임죄를 물을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주주 배정방식으로 발행되건 제3자 배정방식으로 발행되건 회사에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