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

이명박 대통령의 헌화 순서에서 한 차례 소동이 있었다. 백원우 민주당 국회의원 등 일부 격앙된 참석자들이 “사과하라” 며 소리를 지르며 뛰쳐 나간 것.

경호원들의 제지로 소동이 무마된 뒤 문재인 전 비실장이 이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방송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문 전 실장은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에게 백 의원 등의 소란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고개를 가로젓고 손을 내저었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이 ‘괜찮다’는 취지의 답을 한 게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자칫 아수라장으로 돌변할 수도 있었을 위기에서 문 전 실장이 지혜롭게 중심을 잡은 것이다.

문 전 실장은 늘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원투수를 자청했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도, 검찰 수사를 받을 때도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지난 23일 양산 부산대 병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공식 발표하는 역할도 문 전 실장의 몫이었다. 평생 지기를 보내는 슬픔을 억누르고 차분한 목소리로 브리핑을 진행했다.

장례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도 문 전 실장의 손을 거쳤다. 노 전 대통령 유족들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한때 한나라당 지도부의 조문이 가로막히자 박희태 대표를 만나 “큰 결례다. 상황이 어렵다”고 양해를 구한 것도 문 전 실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전 실장의 인연은 27년 전인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문 전 실장은 시위 전력 때문에 임용되지 못하자 부산으로 내려가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이끌던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했다. 노 전 대통령은 문 전 실장을 가리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나타냈다.

문 전 실장은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내다 건강 악화로 1년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노 대통령 탄핵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달려와 변호인단을 꾸렸다. 2005년엔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참여정부 시절 ‘왕수석’으로 불렸던 문 전 실장.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이었다.

한경닷컴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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