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 개방 문제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는 2014년까지 쌀 시장 개방을 늦추는 대신 매년 수입 물량을 조금씩 늘려주는 현행 방식을 바꿔 내년부터 시장을 개방하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농민단체들은 섣불리 관세화를 통한 시장 개방에 나설 경우 국내 농업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자 정부는 최근 민 · 관 합동기구인 농어업선진화위원회 산하에 이 문제를 다룰 별도 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농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

◆쌀 시장 개방,무엇이 문제인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 한국은 쌀 시장 개방 시기를 2004년까지 늦췄다. 2004년이 되자 정부는 미국 호주 중국 등 주요 쌀 수출국과의 협상을 통해 개방 시기를 또다시 2015년까지 유예하는 새 협약을 맺었다. 대신 한국은 매년 일정 규모의 외국 쌀을 5%의 낮은 관세만 부과해 수입해야 하는 '의무수입물량'(TRQ)을 배정받았다. 이 물량은 2005년 22만5575t을 시작으로 해서 매년 2만347t씩 늘어 2014년에는 40만8700t까지 증가한다.

정부가 당시에 이 같은 조건을 수용한 것은 시장 개방으로 미국 태국 등지의 값싼 쌀이 들어올 경우 국내 농가 피해가 극심할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시장 개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차선의 선택을 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 쌀 국제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국제 쌀 가격은 미국산 중립종 기준으로 2004년 t당 405달러에서 지금은 120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예전에 비해 3배나 높은 가격으로 외국 쌀을 의무적으로 사들여야 하고,그 물량도 단계적으로 늘려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시장개방 빨리 해야 이득"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의 국제시세를 감안하면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외국 쌀이 들어올 여지가 거의 없다는 논리다.

현재 국내산 쌀 가격(일반미 기준)은 80㎏당 16만원 정도인 반면 미국산 중립종의 국제시세는 이달 25일 기준 98달러로 원 · 달러 환율 1200원을 적용할 경우 11만7600원에 해당한다. 여기에 100%의 관세만 물려도 가격은 23만원을 넘게 된다.

UR 협상 당시 제시됐던 300~400% 안팎의 관세를 매길 경우 수입쌀의 국내 유통가격은 47만~58만원가량에 달한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해도 너무 비싸 사 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란 얘기다.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이 920원대,국제 쌀 가격이 425달러까지 떨어지더라도 400% 안팎의 관세를 매겨 수입하면 국내산 쌀이 수입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높다"고 설명했다.

의무수입물량 부담이 계속 늘어나는 것도 시장 조기 개방을 해야 하는 이유로 꼽힌다. 2014년 의무 수입 물량 40만8700t은 쌀협상 당시인 2004년엔 연간 소비량의 8%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후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속도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2014년 소비량의 12%에 이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국내산에 비해 20~30%가량 낮은 가격으로 들어오는 의무수입물량 비중이 늘어날수록 국내 쌀 시장 피해는 더 커지게 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시장을 내년에 개방하면 의무수입물량을 30만t 수준으로 고정시킬 수 있다"며 "2015년까지 개방을 미룰 때와 비교하면 의무수입물량 도입 비용을 1800억~3700억원가량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민단체는 거세게 반발

이에 대해 농민단체들은 국제 쌀 시세가 급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근거로 정부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2001년 9월 국제 쌀 시장에서 재고 물량 급증으로 쌀 가격이 231달러까지 떨어졌던 것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부설 농업정책연구소 관계자는 "쌀 가격이 t당 200달러대로 떨어지면 400%의 높은 관세를 매겨도 수입산 쌀 가격은 10만원을 밑돌게 된다"며 "시장 개방 이후 국제 곡물가격 변화와 환율 변동 등으로 수입산 쌀 가격이 낮아지면 쌀 재배농가의 부담만 가중시키게 된다"고 지적했다. 농민단체는 또 향후 있을 DDA협상 결과 쌀에 부과하는 관세율이 대폭 감축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만약 DDA협상에서 한국이 지금처럼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 쌀 시장 개방 이후 400% 안팎의 관세를 매길 수 있지만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쌀에 매기는 관세를 200%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의무수입물량도 국내 쌀 소비량의 3.5%만큼 더 늘려야 해 조기 개방이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하고 있다.

◆내년 쌀 시장 개방 가능할까

주무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가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개방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현재로선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해 보인다. 농민단체의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농민단체를 최대한 설득해 다음 달 초에는 학계 및 농민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별도 논의기구를 설치,이 기구를 통해 쌀 시장 조기 개방 여부를 결론짓는다는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부 농민단체가 무조건 반대를 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농민과 농민단체들은 조기 시장 개방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며 "내년에 쌀 시장을 개방하기 위해선 쌀 수출국과의 협상 등 최소 3~4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9월까지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