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전직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로 인한 슬픔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한 인간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다. 더욱이 꿋꿋이 외길을 걸어온 전직 대통령이었기에 지지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이 그 죽음을 애도하였다. 하지만 '이놈의 나라'를 원망하는 감정섞인 외침이 적지 않고 일부 정치인들이 법 집행을 비난하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것을 보면 걱정스럽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비극은 민주주의 원리 자체에 그 씨앗이 배태되어 있다. 민주주의에서 개인은 누구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한다. 이들은 자신의 권리 증대를 위한 정책에 표를 던진다. 정책이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관심이 적다. 표에 약할 수밖에 없는 정당은 지지자의 이익을 위해 이를 입법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정치영역에서 사실과 진실은 사라지고 지지자들의 이익이 이를 대체하게 된다. 정부가 경제에 간섭하는 바가 커지면 개인은 힘들여 일하기보다 '온정주의적' 정부에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이익을 위한 권리 투쟁만이 남게 되고,책임이나 의무는 귀찮은 존재가 되고 만다.

우리 사회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광우병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열광적인 대중의 믿음이 보편적 지식을 쉽게 무력화시켰다.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라는 불법적인 투쟁이나 파업이 끊이질 않는다. 인권보장을 위해 정부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법을 지키거나 타인의 피해를 줄이려는 책임이나 의무는 무시되고 있다. 사회적 공론의 장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전투의 장이 된 지 오래다. 진실을 가리는 지식인마저 편이 갈려 소통이 어려울 지경이다. 정치는 의견이 조정되는 장이 아니라 지지자의 권리를 관철하기 위한 물리적 충돌의 장이 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는 가치의 경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갈등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많은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통합의 구심력 역할을 하는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국왕이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왕은 사회적 통합의 상징적 역할을 한다. 일부 국가들은 수상과 대통령의 권한을 분리하여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통합에 힘쓰게 하는 정부 형태를 택하기도 한다. 혹은 사법부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여 사회적 갈등을 제도 내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는 미흡하고 그마저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존경받던 종교인이나 덕망 있는 인사들이 부분적이나마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마저 요즘에 이르러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고 변절자로 폄하되는 일이 흔하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제도적 장치인 사법부의 권위도 미약하다. 시민단체들은 자신의 주장과 다르다고 대법원의 판결을 쉽게 비난한다. 법원의 최종 판결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제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사라지고 만다.

사회적 통합을 위한 구심력이 상실되면,남는 것은 정파적 입장에 따른 사생결단식의 투쟁밖에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서는 갈등의 해소를 위한 국민통합이 중요하다. 정파적 투쟁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이 늘어날수록 물리적 해결에 의존하려는 유혹이 커져 민주주의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통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소한 국민통합의 중요성만이라도 인식하고 이를 위해 진지한 토론이 이뤄졌으면 한다. 법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사법부를 위해 사법부의 구성에서 정파적 영향을 배제하는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지나치게 집중된 대통령의 권한을 줄여 외교나 국방을 비롯해 국민 통합에 필요한 역할을 당적을 떠난 정치인에게 맡기는 방안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기화 <전남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