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에 본격화될 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사모투자펀드(PEF)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가 경영권 인수가 아닌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의 '재무안정 PEF' 도입을 추진하는 등 PEF시장 활성화에 적극 나서면서 글로벌 업체들과 국내 금융 업체들의 관심이 높다.

개인 자산가들도 자체적으로 PEF 설립을 추진하고 있어 향후 기업 구조조정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건의 신규 PEF가 금융감독원에 등록하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꽁꽁 얼어붙었던 PEF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PEF에 투자를 약속한 약정 누계액은 지난달 말 15조8000억원가량으로 추정돼 5개월여 만에 다시 15조원대로 올라섰다.

특히 마이어자산운용이 글로벌 사모펀드와 투자 약정을 맺고 1조원 규모의 PEF를 조성해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PEF는 MBK파트너스(1조5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로,자금 전액을 외국에서 끌어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회사 이근경 회장은 "일본계가 아닌 외국계 사모펀드와 투자 약정을 맺고 PEF를 설립해 금감원에 등록했다"며 "현재 투자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어자산운용은 정부 산하 기관인 행정공제회가 대주주(지분 35%)인 실물자산 투자전문 운용사로,재경부 차관보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 회장이 2007년 설립을 주도했다.

산업은행과 국민연금 등도 글로벌 업체들과 손잡고 PEF를 속속 만들고 있다. 산은은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지난달 1000억원 규모의 '턴어라운드 PEF' 설정을 완료했고 조만간 대기업 투자용 PEF를 새로 만들 계획이다. 산은 관계자는 "투자 협약을 맺은 미국 PEF인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가 참여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도 세계 최대 규모의 PEF인 블랙스톤과 손잡고 각각 20억달러씩 출연해 총 40억달러를 국내 기업과 부동산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하기로 약정을 맺은 상태다.

우리금융그룹도 계열사인 우리PE를 통해 1조원 규모의 국내외 매칭 방식 PEF를 만들기 위해 외국계와 접촉하고 있다.

이날 국민연금이 최대 2조원 규모의 PEF 자금을 위탁할 운용사 선정에 착수한 것을 계기로 증권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글로벌 PEF와 공동으로 5000억원 규모의 PEF를 계획 중인 KB투자증권을 비롯해 대우 · 현대 · 굿모닝신한 · SK · NH투자 · 메리츠 · HMC투자 · IBK투자증권 등이 PEF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한 곳은 지난주에 500억원 규모의 소형 PEF를 만들어 금감원에 등록했다.

거액 자산가들도 PEF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 사장을 지낸 표문수씨는 '액티움(Actium)'이란 PEF를 설립하기 위해 국내외 자금을 적극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민주 전 C&M 회장은 송승욱 전 미래에셋PEF 대표를 자신이 대주주인 에이티넘파트너스 사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최근 운용팀을 꾸렸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케이블TV 업체 C&M을 팔아 1조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자산가다.

송 사장은 "운용 인력을 충원하고 기업 M&A를 포함한 다양한 투자 대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과거 외환위기 당시에는 PEF가 없어 론스타 등 외국계가 구조조정 시장을 독식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며 "PEF가 활성화되면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돼 금융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PEF(사모투자펀드 · Private Equity Fund)=소수의 기관 및 고액 투자자들로부터 수백억원에서 수조원대의 자금을 모아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고수익을 내는 일종의 '바이아웃(Buyout) 펀드'다. 2004년 12월 허용됐다. 올 하반기에는 기존 PEF와 달리 경영권을 인수하지 않고도 재무구조 개선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재무안정 PEF'가 도입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