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최근 전남 영암의 포뮬러원(F1) 경기장 건설공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서울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를 타니,목포역에 3시간 20분 만에 닿더군요. 목포역에서 경기장까지 차로 30여 분 더 걸렸습니다.

내년 F1 개최에 대해 들떠있는 현지 분위기를 감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공사현장 앞에서야 "영암군민 7만명은 F1 대회를 염원합니다."라고 써붙인 플래카드를 볼 수 있었지요. 불황 탓인지 지역 중추산업인 조선(선박) 경기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높다는 게 현지 사람들의 얘기였습니다.

토목공사는 52% 정도 완료된 상태입니다. 지난 4월 건축 기공식 후 그랜드 스탠드와 미디어센터 등을 짓고 있었습니다.

매립지 연약지반이어서 곳곳에서 검은 색 집수정 설치공사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집수정은 지반의 습기를 빨아들이는 우물 역할을 하는 장치입니다. 또 곳곳에서 지하 30m까지 콘크리트 파일을 박아 지반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죠.

F1이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라지만,국내에선 이런 열기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마니아층도 상당히 제한적인 게 사실입니다.

다만 내년부터는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F1 한국 그랑프리가 매년 열리게 되면,열렬 팬도 상당수 생겨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은 자동차 생산 5위 국가입니다. 자체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고 세계 각지로 수출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힙니다.

그런 점에서,현대자동차가 내부적으로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감지됩니다. F1 한국 그랑프리가 조만간 열릴텐데,국내를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F1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선 자본과 기술력,경주팀 등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현대차가 일본 혼다의 전(前) F1 경주팀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혼다는 F1에서 여러 번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는데,자금 압박 때문에 작년 말 자체 경주팀을 '브라운GP'란 신생팀에 매각했지요.

현대차가 작년 말 혼다 F1 경주팀을 인수했다면,단 번에 세계 정상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브라운GP는 올해 열린 6번의 각국 F1 대회에서 5회이나 우승했습니다.(KAVO 통계)

2002년부터 F1에 참여하고 있는 도요타가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놀라운 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차가 우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는 혼다의 전 레이싱팀(현 브라운GP)을 지금 인수하기 위해선 상당액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연속 우승 덕분에 몸값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현대차는 과거 국제 레이싱 경험이 있습니다. 1990년 대 후반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 참여했다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지요. 그 이후엔 이렇다할 국제경주 참여 실적이 없습니다.

현대차의 혼다 레이싱팀 인수 소문은 그룹 계열사와 F1간 인연도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현대차그룹 계열 광고대행사인 이노션은 작년 말 F1 한국운영법인인 KAVO의 종합 광고대행사로 선정됐지요.

이현순 현대·기아차 부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습니다. 이 부회장은 "혼다가 버린 팀을 인수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혼다 레이싱팀을 인수해봤자 관련 경주차 기술을 모두 가져오는 게 아니란 점도 작용한 듯 합니다.

현대차는 세계시장에서 '저급차'의 이미지를 벗고 한 단계 도약해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가 올라가야 차값도 높일 수 있지요.

그럼 점에서 F1은 강력한 홍보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혼다가 기술력을 과시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던 데엔 F1이 큰 힘이 됐습니다.(혼다는 1960년대부터 F1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매년 3000억원 이상씩 투자해야 하는 고비용입니다. 자금이 워낙 많이 소요된다는 겁니다.

지금으로선 이 정도의 투자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크겠습니다만,내년부터 매년 열리는 F1 한국 그랑프리를 맞아 전향적으로 검토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현대차 경주팀이 F1 시상대의 맨 꼭대기에 선다면,전세계에서 골수 팬도 적지 않게 생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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