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인물탐구 - 정만원 SK텔레콤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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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밝고 환한 웃음 뒤엔 냉혹한 승부 근성이…
밝고 환한 웃음 뒤엔 냉혹한 승부 근성이…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웃음이 많은 사람이다. 스스로 얘기를 하면서 거의 1분에 한 번꼴로 웃는다. 그것도 가벼운 쇳소리를 내며 한 호흡이 다할 때까지 웃는다. 별로 웃기는 얘기가 아닌데도 습관처럼 그런다. 본인만이 갖고 있는 일종의 리듬이다. 그 짧은 순간에 화제의 포인트를 잡아내고 얘기의 흐름을 정리한다.
웃는 습관 덕분인지 얼굴엔 별로 그늘이나 구김살이 없다. 흔히 성공한 최고경영자(CEO)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노회함도 없다. 담백한 인상에 언제나 밝은 표정이다.
하지만 임직원들이 바라보는 정 사장은 그렇게 온화한 사람이 아니다. 한번 걸리면 속된 말로 엄청나게 깬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 사장은 평소 임원이나 간부들에게 "부하들을 야단치지 못하는 상사는 자격이 없다"고 '야단'을 친다. 대신 30분을 야단치면 1시간은 달래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애정이 담기지 않은 일방적인 질책으로는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몇 년 전 SK네트웍스 사장 시절,그는 점잖은 은행장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수행 임원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고 한다.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채권단 앞에서 기선을 제압당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전술(?)이었다. 그러고 보면 정 사장은 웃음과 호통을 묘하게 양립시키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실패는 없다"
정 사장은 행정고시(21회)에 수석 합격했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다. "1983년 동력자원부 사무관 시절에 처음 봤는데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 사장은 당시 석유정책과 사무관으로 유가와 관련된 각종 수치와 통계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강남훈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원자력정책관)는 얘기도 있다.
물론 머리 좋고 공부 잘한다고 일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 속의 일이란 묘해서 그저 열심히 한다고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제한된 역할이나 경직된 구조 속에서 역량을 무한대로 발휘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다. 정 사장이 장래가 보장된 공무원 생활을 접고 1994년 SK그룹 SOC 추진본부 이사로 옮긴 이유는 일 욕심 때문이었다. 정부보다는 민간기업에 훨씬 더 많은 일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을 좋아했고 스스로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정 사장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를 가장 싫어한다. 여건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부하들이 "최선을 다했지만…"이라는 사족을 달았다간 바로 '깨지는' 코스로 간다.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실패는 없다"다. 참 재미 없지만,실패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소통-축적-돌파
정 사장은 간명하고 거침없는 말투를 갖고 있다. SK텔레콤의 새 사령탑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렸던 신년 하례회에서의 일.정 사장은 한 임원을 빤히 쳐다보며 "많이 까먹고 오셨는데 올해엔 만회하셔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해외의 이동통신사업 자회사를 이끌었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물론 가볍게 건넨 얘기였지만 덕담이 오가는 신년행사에서 흔히 구경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사내방송으로 중계까지 되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임직원들이 느꼈을 긴장감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연초 SK텔레콤의 새 사령탑을 맡은 이후 '소통-축적-돌파'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임직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상호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임직원들의 역량을 축적해야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회사 내부의 성장력 둔화를 돌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회사의 성장동력이 업무능력 축적과 향상에서 나온다는,결국 모든 것이 사람에 달려 있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정 사장은 이를 위해 보다 유연한 생각과 행동을 강조한다. "무조건 큰 비즈니스가 성사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10조원짜리 사업을 새로 하려면 5조원짜리 두 개를 발굴하면 되지만,1000억원짜리 프로젝트도 100개를 모으면 되지 않느냐.SK텔레콤은 항공모함이며 단 한척이어서는 곤란하다. 수없이 많은 새끼 고래들을 띄워야 하며 멀티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
#디지털기업의 새로운 18번은?
사업 얘기가 나오면 정 사장은 더 거침없는 화술을 구사한다. 미래 전략은 국내외 모든 IT(정보기술) 기업들과의 협력 · 융합을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리해준다. 이미 포화상태에 달한 하드웨어보다는 상대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는 소프트웨어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연간 시장규모가 1조달러에 육박하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국내 시장은 고작 2%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방송-통신-인터넷 융합이 가속화되는 현 시점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애플의 전략적 우수성과 차별성을 오랫동안 펼쳐놓은 뒤 자신은 차세대 유무선 네트워크들의 끊김없는 3-스크린 서비스와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선도적으로 개척해나가겠다는 전략을 소개한다.
정 사장은 2003년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간 SK네트웍스를 이끌며 사내에 수많은 히트곡들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재무구조 악화로 은행들의 경영간섭을 받았던 시절에는 전인권의 '사노라면'을 많이 불렀다.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자.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가사가 맘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워크아웃을 성공적으로 졸업해 우량회사로 탈바꿈할 즈음에는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를 열창하기도 했다.
이제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선도기업을 자임하고 있는 SK텔레콤에선 어떤 노래를 부를까. 근데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IT업계에 어울리는 노래는 무엇일까.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웃는 습관 덕분인지 얼굴엔 별로 그늘이나 구김살이 없다. 흔히 성공한 최고경영자(CEO)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노회함도 없다. 담백한 인상에 언제나 밝은 표정이다.
하지만 임직원들이 바라보는 정 사장은 그렇게 온화한 사람이 아니다. 한번 걸리면 속된 말로 엄청나게 깬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 사장은 평소 임원이나 간부들에게 "부하들을 야단치지 못하는 상사는 자격이 없다"고 '야단'을 친다. 대신 30분을 야단치면 1시간은 달래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애정이 담기지 않은 일방적인 질책으로는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몇 년 전 SK네트웍스 사장 시절,그는 점잖은 은행장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수행 임원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고 한다.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채권단 앞에서 기선을 제압당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전술(?)이었다. 그러고 보면 정 사장은 웃음과 호통을 묘하게 양립시키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실패는 없다"
정 사장은 행정고시(21회)에 수석 합격했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다. "1983년 동력자원부 사무관 시절에 처음 봤는데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 사장은 당시 석유정책과 사무관으로 유가와 관련된 각종 수치와 통계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강남훈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원자력정책관)는 얘기도 있다.
물론 머리 좋고 공부 잘한다고 일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 속의 일이란 묘해서 그저 열심히 한다고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제한된 역할이나 경직된 구조 속에서 역량을 무한대로 발휘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다. 정 사장이 장래가 보장된 공무원 생활을 접고 1994년 SK그룹 SOC 추진본부 이사로 옮긴 이유는 일 욕심 때문이었다. 정부보다는 민간기업에 훨씬 더 많은 일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을 좋아했고 스스로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정 사장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를 가장 싫어한다. 여건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부하들이 "최선을 다했지만…"이라는 사족을 달았다간 바로 '깨지는' 코스로 간다.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실패는 없다"다. 참 재미 없지만,실패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소통-축적-돌파
정 사장은 간명하고 거침없는 말투를 갖고 있다. SK텔레콤의 새 사령탑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렸던 신년 하례회에서의 일.정 사장은 한 임원을 빤히 쳐다보며 "많이 까먹고 오셨는데 올해엔 만회하셔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해외의 이동통신사업 자회사를 이끌었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물론 가볍게 건넨 얘기였지만 덕담이 오가는 신년행사에서 흔히 구경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사내방송으로 중계까지 되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임직원들이 느꼈을 긴장감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연초 SK텔레콤의 새 사령탑을 맡은 이후 '소통-축적-돌파'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임직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상호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임직원들의 역량을 축적해야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회사 내부의 성장력 둔화를 돌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회사의 성장동력이 업무능력 축적과 향상에서 나온다는,결국 모든 것이 사람에 달려 있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정 사장은 이를 위해 보다 유연한 생각과 행동을 강조한다. "무조건 큰 비즈니스가 성사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10조원짜리 사업을 새로 하려면 5조원짜리 두 개를 발굴하면 되지만,1000억원짜리 프로젝트도 100개를 모으면 되지 않느냐.SK텔레콤은 항공모함이며 단 한척이어서는 곤란하다. 수없이 많은 새끼 고래들을 띄워야 하며 멀티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
#디지털기업의 새로운 18번은?
사업 얘기가 나오면 정 사장은 더 거침없는 화술을 구사한다. 미래 전략은 국내외 모든 IT(정보기술) 기업들과의 협력 · 융합을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리해준다. 이미 포화상태에 달한 하드웨어보다는 상대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는 소프트웨어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연간 시장규모가 1조달러에 육박하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국내 시장은 고작 2%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방송-통신-인터넷 융합이 가속화되는 현 시점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애플의 전략적 우수성과 차별성을 오랫동안 펼쳐놓은 뒤 자신은 차세대 유무선 네트워크들의 끊김없는 3-스크린 서비스와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선도적으로 개척해나가겠다는 전략을 소개한다.
정 사장은 2003년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간 SK네트웍스를 이끌며 사내에 수많은 히트곡들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재무구조 악화로 은행들의 경영간섭을 받았던 시절에는 전인권의 '사노라면'을 많이 불렀다.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자.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가사가 맘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워크아웃을 성공적으로 졸업해 우량회사로 탈바꿈할 즈음에는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를 열창하기도 했다.
이제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선도기업을 자임하고 있는 SK텔레콤에선 어떤 노래를 부를까. 근데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IT업계에 어울리는 노래는 무엇일까.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