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보이지 않던 외국계 증권사들의 '매도 보고서'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이 공매도를 허용하기로 한 시기와 맞물리면서 시장에선 공매도를 일삼는 외국인 고객을 많이 보유한 외국계 증권사들이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 의구심이 일고 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미리 판 뒤 나중에 주식시장에서 되사서 갚는 투자 기법으로 주가가 하락해야 이익을 낼 수 있다. 지난해 10월 공매도가 금지되기 전엔 국내 공매도 거래의 90% 이상을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공매도 허용 전날 국내 증시가 북한 핵문제로 하락 요인이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 증권사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증시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당분간 증시 조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골드만삭스는 이와 함께 주식을 많이 빌려간 대표 종목인 두산중공업에 대해 별도 보고서를 내고 "신규 수주가 없으며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며 투자의견을 '매도'에서 '적극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대해 두산중공업 측은 "골드만삭스는 2007년 5월 이후 기업 탐방을 오거나 연락을 해 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이런 보고서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증권사는 이날도 CJ오쇼핑의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한 단계 낮췄고 하나투어에 대해서도 '매도'로 조정했다.

다른 외국계 증권사들도 국내 대표 종목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UBS는 이날 현대모비스한라공조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으며 삼성전기는 '중립'에서 '매도'로 낮췄다. 크레디트스위스(CS) 역시 NHN의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내렸다.

이들 외국계 증권사는 최근의 투자 의견 조정 사유에 대해 "그동안 주가가 너무 올라 목표주가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라는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코스피지수가 1400선을 넘었던 지난달 외국계 증권사들이 낸 매도 보고서보다 전날과 이날 이틀간 나온 보고서가 훨씬 많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형 증권사 투자전략팀장은 "올 3월부터 오르기 시작한 증시는 5월 들어선 줄곧 횡보세를 거듭하고 있다"며 "'오비이락'도 아니고 공매도 재허용 시기에 맞춰 일제히 부정적인 보고서를 쏟아내는 것은 주가가 하락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또 북한 핵문제로 증시 하락 압력을 거론한 골드만삭스의 뉴욕 본사 측은 불과 6일 전인 지난달 27일 "월가의 아시아지역 투자담당자들 사이에 북핵 문제는 이미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라며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한국물 가격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고 밝힌 점에 비춰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