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수 대학 경영학 석사(MBA) 학위는 고소득의 보증수표로 여겨졌다. 그도 그랬을 것이 MBA의 2007년 평균 연봉은 7만5000달러로 고교 졸업생 평균(3만달러)의 2.5배에 달했고,4년제 대졸자(5만달러)와 일반 석사학위 소지자(5만9500달러)에 비해서도 엄청나게 높았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사태는 돌변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MBA 학위가 주홍글씨처럼 됐다"는 고백이 나왔을 정도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불황의 늪에 밀어넣은 주범 중 상당수가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대 MBA 출신으로 드러난 까닭이다.

월가를 이끌던 이들 엘리트들의 탐욕과 과도한 자신감,비윤리적 경영에 대한 비판이 미국 주요 경영대학원들의 커리큘럼 혁신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엔 이들 대학원을 졸업하는 MBA들이 도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MBA 서약'에 서명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4일 졸업하는 하버드 MBA 20%가 "개인적 야망을 추구하느라 기업과 사회를 해롭게 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담긴 서약서에 사인했고,컬럼비아대 MBA 역시 "평생 진실 · 성실 · 존중이란 원칙을 고수하겠다. 남을 속이거나 남의 것을 훔치지 않겠다"는 내용의 윤리규범에 서명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또 올 봄 'TFA(Teach for America)'에 하버드 · 프린스턴 · 예일 등 아이비리그 4학년생 11%가 지원,화제가 됐다. TFA란 저소득 · 교육 낙후 지역에서 교사로 일할 우수대학 졸업생을 모집해 훈련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이른바 명문대생들의 이 같은 변화에 대한 해석은 간단하다. 경기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우리 세대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젊은 엘리트들이 도덕성과 지도력 회복을 통한 국가 품격 제고라는 사회적 책무에 눈 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천에도 앞장선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최근 서울대생들이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멘토로 공부와 생활지도를 맡는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나섰다. 엘리트란 혼자 잘난 자가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동시대와 미래의 구성원을 위해 나누는 사람이다. 이땅에도 현실과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을 넘어 이웃에 대한 배려와 협조로 보다 나은 세상을 이끌어내는 엘리트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