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이 2일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이날 영장심사를 담당한 김형두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혐의 사실에 대한 검찰의 소명이 부족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영장기각 사유를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위기에 몰린 검찰이 천 회장의 신병확보에도 실패함에 따라 '박연차 게이트'의 남은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김 판사는 "천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 등에게 청탁한 사실은 소명됐으나 그 대가로 중국 베이징에서 15만위안을 받았다는 점과 박 전 회장의 회사에 투자한 돈 중 6억2300만원을 돌려받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세 포탈 혐의는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고,증권거래법 위반 부분은 소명이 있다고 인정되지만 범행의 정도와 동기 등을 참작할 때 비난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천 회장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의 우려가 없고 고령인 점 등도 참작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에 대해 "영장기각 사유를 검토해보고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앞서 천 회장이 작년 7~11월 국세청이 태광실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할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에게 조사 중단을 청탁하고 그 대가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7억여원의 금전적 이득을 챙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으로 지난달 31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천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청탁 대가로 단 1달러도 받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번 천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최대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맞물려 검찰 수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수사력을 집중해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천 회장에 대해서는 '시늉만 하는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어서다.

검찰에 따르면 천 회장은 조사 시간에 비해 조서 읽는 시간이 매우 길었으며 조서를 검토하다 돌연 '몸이 좋지 않다'며 조사 중단을 요청하고 병원에 가기도 해 검찰의 조사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검찰은 그러나 "고의적으로 수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검찰은 천 회장에 대한 구속을 신호탄으로 이번 주부터 김학송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2~3명과 김태호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지자체장,부산고법 P판사와 판사 출신 변호사 등을 차례로 소환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영장 기각으로 조사 일정이 차질을 빚고,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기소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임채진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 사퇴와 수사팀 교체까지 이뤄질 경우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