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주의가 다시 뜨고 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글로벌 위기에 직면한 세계 경제는 끔찍했던 악몽을 되새기면서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큰 획을 그었던 케인스의 주장에 관심을 쏟고 있다. 모두가 케인스주의자를 자처한다. '변화의 기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공공연히 케인스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케인스주의의 진정한 함의는 모호한 게 사실이다. 대부분 정부의 시장 규제,적자 재정,국유화 등에 관심을 갖지만 정작 '케인스의 근본적인 메시지'는 간과하고 있다. 경제의 작동원리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케인스의 깊은 분석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메커니즘이 파탄난 현 상황에서 시장을 보완하고 대체할 '보이는 손'의 능동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버클리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저명한 금융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예일대 교수)의 공동저서 《야성적 충동》은 케인스 혹은 그의 대표작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의 근본 메시지를 현대적인 맥락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최근의 경제위기가 이미 해결된 것으로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급하게 새로운 해답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대공황에 비견될 충격에 시달리는 우리의 문제와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은사로서 케인스의 진정한 정신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책에서 케인스의 진정한 메시지로 주목하는 것이 바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다. '행동에 대한 즉흥적인 욕구'를 의미하며 '동물적 본성' 혹은 '야성적 혈기'로 번역되기도 하는 이 개념이야말로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응하는 케인스 사상,특히 <일반이론>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케인스는 수리적인 계산과 추정에 기반한 이성적 · 합리적 접근에서 벗어나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에 주목한다. 그는 '심리적 요인'이야말로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보았으며,1930년대에 일어난 대공황은 비관과 낙담 그리고 회복기의 심리적 변화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했다고 설명한다.

저자들도 불황과 실업,빈곤,부동산 가격 변동 등 경제학적이며 심리학적인 사례를 근거로 자유시장경제가 만들어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또 '야성적 충동'의 다섯가지 요소인 자신감,공정성,부패와 악의,두려움,이야기 등이 현대인의 경제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레이거노믹스,대처리즘,합리적 기대이론의 허점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특히 경제학에다 심리학이나 사회학적 통찰력을 가미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을 기반으로 이 책을 썼다. 애커로프와 쉴러는 "경제학적 개념에서 야성적 충동은 경제에 내포된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는 요소를 말하며,사람들이 모호성이나 불확실성과 맺는 독특한 관계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경시되거나 아예 무시돼 온 측면들을 부각시킨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금융위기 및 주택위기와 같은 경제위기가 대부분 사고 경향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외견상 견실한 재무구조에도 불구하고 단 며칠 만에 유동성이 바닥나 파산에 내몰린 베어스턴스나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돈을 떼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우려에 휩싸인 기관투자가들의 군중심리에 영향받은 바 크다.

또 서브프라임 부실과 별 연관이 없는 한국을 비롯해 지구촌 전반이 무차별적으로 혼란에 휩싸인 것도 '사고의 전염효과'로 설명된다.

이 책은 현대의 주류 경제학을 대상으로 정통 경제학자들이 쓴 '내부로부터의 진지한 반성'과 아울러 현대 경제학의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담고 있다. 이들이 개척하고 있는 경제학의 새로운 전선에 많은 과제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 지향적인 관점으로 볼 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들의 말처럼 "지금과 아주 다른 특성과 편익을 지닌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