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200만 돌파 '마더'의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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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하신 어머니 "영화가 무시무시하더라", 연기의 신 김혜자 "됐다"고 해도 "더 찍자"
엄마 아닌 어미 이야기… 母性의 본질이 뭔지 관객에게 물어보고 싶었죠
"내 주인공은 항상 약자…'나도 그랬을거야' 공감이 흥행비결"
엄마 아닌 어미 이야기… 母性의 본질이 뭔지 관객에게 물어보고 싶었죠
"내 주인공은 항상 약자…'나도 그랬을거야' 공감이 흥행비결"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개봉 9일째인 지난 6일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 사상 최고 기록인 130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봉 감독의 전작 '괴물'에 비해서는 뒤지지만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로는 흥행 속도가 가장 빠르다.
봉 감독은 역대 스릴러 중 최다 관객(525만명 · 2003년)을 기록한 '살인의 추억' 이후 3년마다 장편을 내놓아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고루 지지를 받고 있는 '한국 영화의 간판'이다.
그는 "관객들의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늘 약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며 "서민들의 습성을 관찰하기 위해 요즘도 지하철을 타거나 한강 둔치를 거닌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실내에는 자신의 전작 포스터들과 '마더' 출연 배우들을 직접 찍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마더'의 초반 기세가 좋다.
"배우들의 힘이 크다. 대중에게 친숙한 김혜자 선생이 강렬한 연기를 보여 준다고 하니,나이 든 관객들이 온다. '꽃미남' 원빈도 '바보'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제3의 주연으로 내세운 진구를 포함한 배우들의 조합이 스크린에서 어떤 모습일까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론 충격적인 결말도 한몫 했다. "
▶관객들의 반응이 칭찬 일색이던 전작들과 달리 비판도 꽤 있다.
"평론가와 마니아들은 역대 내 작품 중 가장 뜨거운 찬사를 보내 온다. 그러나 일반 관객은 찬사와 비판이 7 대 3 정도로 나뉜다. 부정적인 반응으로는 '이상하다''불편하다' 등을 꼽을 수 있다. 아마도 달콤하거나 해피한 결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느낌은 역설적으로 진실에 가깝다는 의미다. 실제 영화를 본 아줌마들은 나라도 저 상황이라면 저럴 수 있다고 말한다. "
▶어머니도 관람하셨다는데….
"어머니는 내게 '최후의 관객'이라 어떤 반응을 낼지 늘 두렵다. '마더'의 스토리를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사회 직전 '어버이날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고 귀띔했다. 충격받으실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관람 직후 전화로 소감을 물어보니 '수고했다''고생 많았겠다'고만 답하셨다. 며칠 후에는 '영화가 무시무시하더라''피도 좀 튀고' 하면서도 '동네 아줌마들이랑 또 보러 간다'고 하셨다. 나는 그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 주시라고 말했다. "
▶어떤 이야기이기에 어머니한테까지 그리 겁을 줬나?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구출하려고 엄마가 고군분투하는 플롯을 통해 어머니의 본질을 관객과 나 자신에게 묻는다. '엄마 품은 따뜻하다''모성은 위대하다' 식의 접근은 많았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성이 한 발만 잘못 내디디면 무서운 광기로 돌변할 수 있다. 인간사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새끼가 위협받을 때 맹수들은 0.1초 사이에 '으르렁'거리며 본능을 폭발시킨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아들 얘기가 아니라 어미와 새끼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내 어머니 모습도 부분적으로 들어갔고,와이프나 김혜자 선생,시나리오를 함께 쓴 박은교 작가의 여성적 감수성이 녹아들어 있다. "
▶'괴물'과 스타일 면에서 꽤 다르다.
"'괴물'은 식인 괴물 소동뿐 아니라 정부와 미국도 비판하는 등 '백화점식 풍자'를 드러냈다. 쉽게 말해 '괴물'이 땅을 넓게 판 구조라면 '마더'는 좁은 구멍을 깊게 팠다. 엄마와 아들의 얘기에 집중한다. 단순하면서도 깊어지고,강렬해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김혜자란 인물로 카메라가 점점 다가선다. 초반부 롱샷 위주가 후반에는 얼굴이나 눈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
▶10년 만에 영화에 출연한 김혜자씨의 연기 변신은 어떻게 이끌어 냈나.
"김혜자 선생이 '연기의 신'이란 사실은 누구나 안다. 웬만해선 '변함 없이 잘했네' 정도 얘기만 들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더 뚫고 나가야 했다. 벼랑 끝에 새끼 발가락이 걸쳐질 때까지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다행히 김혜자 선생은 에너지가 넘쳤고,매너리즘에도 빠져 있지 않았다. 자기 연기에 대해 불안해했다. 내가 '됐다'고 해도 '더 찍고 싶지?'라고 반문했다. 화장터에서 유가족에게 따귀 맞는 장면에선 무려 12~13차례나 NG가 나는 바람에 얼굴이 빨개졌다. 따귀를 맞은 것은 연기나 실생활에서 난생 처음이라고 했다. '국민 엄마'가 따귀 맞았을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미안했다. "
▶데뷔작이 실패한 것과 2~3번째 작품이 대히트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흥행 요인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는 컨셉트가 명확하지 않았다. 줄거리가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 강아지를 죽이는,사소한 사건으로 끌어간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다음 작품부터는 굵직한 사건을 다루기로 작심했다. 그렇다고 차기작들의 흥행 전망이 밝았던 것은 아니었다. '살인의 추억'의 부분 투자자는 완성작을 본 뒤 자금을 회수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었다. '괴물'은 기획 단계에서 어린이용 영화라며 주변인들이 만류했다. "
▶대중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스토리 전략이 필요한가?
"스토리를 끌어가는 것은 인물이다. 내 영화 주인공은 항상 약자였다. '어리숙한 형사''한강 매점 주인''바보 아들을 키우는 홀어머니' 등을 보면서 관객들은 저들의 신분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자기 처지와 비슷한 데서도 공감을 얻는다. 우리 엄마도 저 말 했는데….나라도 저 상황에서 그랬을 거야 식의 반응도 나타낸다. "
▶유머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괴물'의 합동 분향소 신에선 관객들이 웃었다. 괴물에게 딸을 잃어버린 가족들이 오열하면서 "니 덕에 우리 가족이 다 모였다"고 말한 것이다. '마더'에서도 아들의 친구(진구)가 여친과 섹스할 때 엉뚱하게도 끝말 잇기를 한다. 그걸 몰래 훔쳐보는 김혜자의 심경은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다. 끝말 잇기는 그들에게 섹스가 놀이처럼 익숙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런 상황과 대사들은 창작 단계에서 단계를 밟아 나오지는 않는다. 갑자기 튀어나올 때 오히려 기발하다. 이런 상황을 채집하기 위해 요즘도 전철을 타거나 한강 둔치에 앉아 사람들의 말을 엿듣는다. "
▶한국 영화가 침체에 빠져든 이유는 이처럼 재미난 이야기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때문 아닌가?
"불법 복제와 스크린쿼터 축소 등 사회적인 문제도 있겠지만,영화 자체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흥행작은 '재미있거나''충격적이거나''새롭다'.이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만 있어도 예전에는 성공했지만,요즘에는 '재미있으면서도 새로워야 한다'는 식으로 두 가지 요소 이상이 결합돼야 한다. 이를 위해 모험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
▶한국 영화의 부흥을 위해 정책 당국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정책 결정자는 모험적인 시도에 대해 세 차례 중 한 차례 정도는 손을 들어 줬으면 한다. 산업이 재능을 받아들였을 때 대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가령 내가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나홍진 감독이 단편으로 수상한 뒤 히트작 '추격자' 연출 기회를 얻었다. 재능의 샘이 마르지 않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영화산업의 미래는 밝다.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봉 감독은 역대 스릴러 중 최다 관객(525만명 · 2003년)을 기록한 '살인의 추억' 이후 3년마다 장편을 내놓아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고루 지지를 받고 있는 '한국 영화의 간판'이다.
그는 "관객들의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늘 약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며 "서민들의 습성을 관찰하기 위해 요즘도 지하철을 타거나 한강 둔치를 거닌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실내에는 자신의 전작 포스터들과 '마더' 출연 배우들을 직접 찍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마더'의 초반 기세가 좋다.
"배우들의 힘이 크다. 대중에게 친숙한 김혜자 선생이 강렬한 연기를 보여 준다고 하니,나이 든 관객들이 온다. '꽃미남' 원빈도 '바보'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제3의 주연으로 내세운 진구를 포함한 배우들의 조합이 스크린에서 어떤 모습일까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론 충격적인 결말도 한몫 했다. "
▶관객들의 반응이 칭찬 일색이던 전작들과 달리 비판도 꽤 있다.
"평론가와 마니아들은 역대 내 작품 중 가장 뜨거운 찬사를 보내 온다. 그러나 일반 관객은 찬사와 비판이 7 대 3 정도로 나뉜다. 부정적인 반응으로는 '이상하다''불편하다' 등을 꼽을 수 있다. 아마도 달콤하거나 해피한 결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느낌은 역설적으로 진실에 가깝다는 의미다. 실제 영화를 본 아줌마들은 나라도 저 상황이라면 저럴 수 있다고 말한다. "
▶어머니도 관람하셨다는데….
"어머니는 내게 '최후의 관객'이라 어떤 반응을 낼지 늘 두렵다. '마더'의 스토리를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사회 직전 '어버이날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고 귀띔했다. 충격받으실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관람 직후 전화로 소감을 물어보니 '수고했다''고생 많았겠다'고만 답하셨다. 며칠 후에는 '영화가 무시무시하더라''피도 좀 튀고' 하면서도 '동네 아줌마들이랑 또 보러 간다'고 하셨다. 나는 그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 주시라고 말했다. "
▶어떤 이야기이기에 어머니한테까지 그리 겁을 줬나?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구출하려고 엄마가 고군분투하는 플롯을 통해 어머니의 본질을 관객과 나 자신에게 묻는다. '엄마 품은 따뜻하다''모성은 위대하다' 식의 접근은 많았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성이 한 발만 잘못 내디디면 무서운 광기로 돌변할 수 있다. 인간사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새끼가 위협받을 때 맹수들은 0.1초 사이에 '으르렁'거리며 본능을 폭발시킨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아들 얘기가 아니라 어미와 새끼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내 어머니 모습도 부분적으로 들어갔고,와이프나 김혜자 선생,시나리오를 함께 쓴 박은교 작가의 여성적 감수성이 녹아들어 있다. "
▶'괴물'과 스타일 면에서 꽤 다르다.
"'괴물'은 식인 괴물 소동뿐 아니라 정부와 미국도 비판하는 등 '백화점식 풍자'를 드러냈다. 쉽게 말해 '괴물'이 땅을 넓게 판 구조라면 '마더'는 좁은 구멍을 깊게 팠다. 엄마와 아들의 얘기에 집중한다. 단순하면서도 깊어지고,강렬해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김혜자란 인물로 카메라가 점점 다가선다. 초반부 롱샷 위주가 후반에는 얼굴이나 눈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
▶10년 만에 영화에 출연한 김혜자씨의 연기 변신은 어떻게 이끌어 냈나.
"김혜자 선생이 '연기의 신'이란 사실은 누구나 안다. 웬만해선 '변함 없이 잘했네' 정도 얘기만 들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더 뚫고 나가야 했다. 벼랑 끝에 새끼 발가락이 걸쳐질 때까지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다행히 김혜자 선생은 에너지가 넘쳤고,매너리즘에도 빠져 있지 않았다. 자기 연기에 대해 불안해했다. 내가 '됐다'고 해도 '더 찍고 싶지?'라고 반문했다. 화장터에서 유가족에게 따귀 맞는 장면에선 무려 12~13차례나 NG가 나는 바람에 얼굴이 빨개졌다. 따귀를 맞은 것은 연기나 실생활에서 난생 처음이라고 했다. '국민 엄마'가 따귀 맞았을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미안했다. "
▶데뷔작이 실패한 것과 2~3번째 작품이 대히트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흥행 요인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는 컨셉트가 명확하지 않았다. 줄거리가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 강아지를 죽이는,사소한 사건으로 끌어간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다음 작품부터는 굵직한 사건을 다루기로 작심했다. 그렇다고 차기작들의 흥행 전망이 밝았던 것은 아니었다. '살인의 추억'의 부분 투자자는 완성작을 본 뒤 자금을 회수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었다. '괴물'은 기획 단계에서 어린이용 영화라며 주변인들이 만류했다. "
▶대중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스토리 전략이 필요한가?
"스토리를 끌어가는 것은 인물이다. 내 영화 주인공은 항상 약자였다. '어리숙한 형사''한강 매점 주인''바보 아들을 키우는 홀어머니' 등을 보면서 관객들은 저들의 신분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자기 처지와 비슷한 데서도 공감을 얻는다. 우리 엄마도 저 말 했는데….나라도 저 상황에서 그랬을 거야 식의 반응도 나타낸다. "
▶유머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괴물'의 합동 분향소 신에선 관객들이 웃었다. 괴물에게 딸을 잃어버린 가족들이 오열하면서 "니 덕에 우리 가족이 다 모였다"고 말한 것이다. '마더'에서도 아들의 친구(진구)가 여친과 섹스할 때 엉뚱하게도 끝말 잇기를 한다. 그걸 몰래 훔쳐보는 김혜자의 심경은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다. 끝말 잇기는 그들에게 섹스가 놀이처럼 익숙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런 상황과 대사들은 창작 단계에서 단계를 밟아 나오지는 않는다. 갑자기 튀어나올 때 오히려 기발하다. 이런 상황을 채집하기 위해 요즘도 전철을 타거나 한강 둔치에 앉아 사람들의 말을 엿듣는다. "
▶한국 영화가 침체에 빠져든 이유는 이처럼 재미난 이야기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때문 아닌가?
"불법 복제와 스크린쿼터 축소 등 사회적인 문제도 있겠지만,영화 자체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흥행작은 '재미있거나''충격적이거나''새롭다'.이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만 있어도 예전에는 성공했지만,요즘에는 '재미있으면서도 새로워야 한다'는 식으로 두 가지 요소 이상이 결합돼야 한다. 이를 위해 모험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
▶한국 영화의 부흥을 위해 정책 당국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정책 결정자는 모험적인 시도에 대해 세 차례 중 한 차례 정도는 손을 들어 줬으면 한다. 산업이 재능을 받아들였을 때 대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가령 내가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나홍진 감독이 단편으로 수상한 뒤 히트작 '추격자' 연출 기회를 얻었다. 재능의 샘이 마르지 않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영화산업의 미래는 밝다.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