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웅진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의 한 실무자는 한-아세안 최고경영자(CEO) 서밋이 열리고 있던 제주도를 찾아가 윤석금 웅진 회장을 만났다.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신 강제성이 낮은 자율협약 체결서에 윤 회장의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윤 회장은 "서울에 돌아가면 감사 인사차 이백순 신한은행장(사진)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 행장은 손사래를 쳤다. "은행장이 고객을 찾아가야지 고객이 은행장을 찾아오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 행장은 며칠 후 서울 을지로의 웅진 본사를 찾아가 윤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재무구조 개선과 장기 성장잠재력 확충을 통해 웅진과 신한은행이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웅진그룹은 지난달 이뤄진 대기업 재무평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부채비율은 낮지만 총자산회전율 등 일부 지표가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웅진의 재무개선 의지와 탄탄한 영업력 등을 평가해 자율협약을 맺기로 결정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등으로 신규 자금 확보에 탄력을 받은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윤 회장이 신한은행에 고마운 감정을 갖는 게 당연한 상황.게다가 요즘 같은 위기 때는 채권은행과 기업 간의 관계에서 은행이 '갑'이 되고 기업이 '을'이 되는 게 보통이다. 이런데도 이 행장은 먼저 고객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기업들이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고객이 언제나 갑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임직원들에게 했던 당부를 직접 실천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과 은행이 장기적으로 상생해 나가려면 서로를 이해하고 전략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