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생활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유책(有責) 배우자'가 청구한 이혼을 법원이 이례적으로 허용했다. 이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것으로,향후 상급심에서도 이를 받아들일 경우 선진국처럼 유책주의가 사라지게 게 귀추가 주목된다.

광주고법 제1가사부(부장판사 선재성)는 8일 A씨(42 · 여)가 남편 B씨(46)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이혼을 불허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이혼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A씨에게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부부의 별거기간이 길고,부부 간에 어린 자녀가 없다면 이혼청구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상대방이나 자녀가 힘든 상황에 처하는 등 사회정의에 반하지 않는다"며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라는 이유만으로 불허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례는 이혼 판단에서 '유책주의'를 고수해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상대방이 혼인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보복 목적 등으로 이혼을 거부하는 등 특별한 경우에만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고 있다.

재판부는 "A씨 부부가 동거한 기간이 7년 남짓인 데 비해 별거기간은 11년 이상이고,자녀는 중 · 고생 등 2명이지만 A씨가 다른 남자 사이에서 낳은 신생아는 장애가 있어 A씨의 양육이 필수적이고 부부 간 재결합 가능성도 거의 없다"며 "이혼청구를 기각해 현재 상황을 지속하는 것보다 혼인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자녀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선진국의 이혼법은 기존의 '유책주의'에서 벗어나 이혼을 허용하는 대신 경제적 약자인 배우자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가혹조항을 두는 '파탄주의'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A씨 부부는 1990년 12월 혼인신고 후 2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의 음주와 외박 등으로 불화가 생겼고 A씨는 1997년 가출한 뒤 남편과 따로 살아왔다. 다른 남자와 동거하면서 지난해 2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은 A씨는 이혼을 청구했지만 1심에서 유책 배우자의 청구라는 이유 등으로 기각됐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