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이든 초 · 중 · 고교든 졸업식은 가족과 친구들이 서로 축하해주는 게 우리네 정서다. 졸업식은 상급학교로 진학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실현하기 위한 새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친구들은 부둥켜 안고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가족들도 축하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 받는 졸업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

그런데 달갑지 않은 졸업장이 있다. '중소기업 졸업장'이 그 것이다. 정부는 얼마 전 직전 3개년 평균 매출액이 1500억원을 넘는 기업에 대해 2012년부터 중소기업에서 졸업시키기로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 기준에 따라 대략 1800개 중소기업이 2011년 12월31일자로 중소기업 졸업장(통보)을 받게 된다.

하지만 졸업식을 호텔 연회장에서 하지도 않고 금장을 입힌 졸업장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중소기업인들은 졸업장을 주고 상급학교(대기업)에 진학시키겠다는 데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그에 어울리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며 실력에 맞는 교과과정을 공부하는 게 마땅한데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몸집과 실력에 상관없이 수천억 · 수조원대의 (거)대기업과 동석시키는 것은 초등학교 졸업생을 대학강의실에 앉혀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책자금 등 중소기업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정책은 1400여개나 된다. 올해 중소기업에 지원되는 자금 127조원은 정부예산의 절반 가까이 되는 규모다. 하지만 중소기업 졸업장을 받는 순간 이런 자금을 한 푼도 못 받는다. 대신 외국인근로자 배정에서 제외되고 사업영역보호를 받지 못하며 여성 · 장애인 채용 비율과 조세부담률은 높아지는 등 규제는 늘고 부담은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중기 명찰'을 떼어내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겠다는 중소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몸집을 키우기보다는 '회사 쪼개기' 등의 인위적 규모조정을 통해 정부의 혜택을 누려왔다. 실제 중소기업연구원 조사에서도 2007년 기준으로 중소기업 범위 경계선상에 있는 1709개 중 290개(17%)가 중소기업 유지를 위해 인위적 규모조정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보니 우리 사회에서 통칭하는 중견기업(상시근로자 300~999명)은 97년 849개에서 2006년 542개로 지난 10년 새 36%나 줄었다. 굵어졌어야 할 산업의 허리가 오히려 가늘어진 것이다.

그래서 산업의 허리격인 중견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다시 (거)대기업으로 성장해야만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졸업장을 받은 기업이 몇 년 뒤 성장동력을 잃고 다시 중소기업으로 주저앉아서는 선진국가로 갈 수 없다. 이를 반영,정부도 최근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정책 마련에 들어갔다. 차제에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기업 관계사가 아닌 기업 중 매출액 1500억~1조원 미만과 상시근로자 300~999명을 중견기업 범주로 정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 또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중견기업에 대해 필요 자금을 집중 지원하는 독일처럼 중견기업 지원을 위한 '중견기업육성특별법'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순환구조가 이뤄지지 않고 계속 중소기업으로 버티면서 기득권만 챙기려고 한다면 대한민국 중소기업 발전은 요원하다.

이계주 과학벤처중기부 차장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