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의 경제학
오는 23일부터 5만원권 지폐가 시중에 유통된다. 5만원권을 사용하면 10만원권 수표 발행이 줄어들고 1만원권 여러 장을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이 사라질 전망이다. 그러나 뇌물 수수가 보다 쉬워지고 물가가 상승하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5만원권의 등장과 함께 나타날 수 있는 사회 · 경제적 변화를 미리 짚어봤다.

◆5000원권과 혼동 조심해야

일상생활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5만원권과 5000원권을 서로 혼동해 물건값을 지급할 때 잘못 낼 수 있다는 점이다. 5만원권과 5000원권은 모두 황색 계통이어서 헷갈리기 쉽다. 한국은행은 5만원권이 5000원권보다 가로가 1.2㎝ 길고 색깔도 5000원권은 주황색에 가까워 구별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물가상승도 우려되는 점이다. 5만원이 일종의 표준 단위로 인식되면서 3만~4만원대 물건 가격이 5만원으로 맞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4만5000원짜리 물건이 있다면 제조사 측이 이 물건의 용량을 조금 늘리거나 일부 기능을 추가한 다음 가격을 5만원으로 올리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어린 자녀들 입장에서는 5만원권 등장이 반가울 수도 있다. 명절 때 받는 세뱃돈의 단위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5만원권이 나온 초기에는 이를 사용해 보려는 과시욕까지 작용하면서 5만원이 세뱃돈의 기본 단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내황 한국은행 발권국장은 "유로화 고액권이 나왔을 때 물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던 사례가 있다"며 "5만원권으로 인해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뇌물 수수 쉬워질 듯

고액권 등장으로 뇌물 수수가 쉬워질 수 있다. 같은 사과상자에 돈을 담더라도 5만원권을 사용하면 1만원권으로 채울 때에 비해 액수가 5배나 커지기 때문이다. 1만원권을 이용할 경우 사과상자에는 5억원,007가방에는 1억원이 들어가는 데 비해 5만원권을 이용하면 사과상자에는 25억원,007가방에는 5억원을 담을 수 있다.

따라서 하루에 3000만원 이상을 현금으로 거래하는 사람의 현황을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토록 하는 '고액현금거래 보고제도'를 보완하고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적발과 처벌을 강화하는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기앞수표 사용이 줄고 화폐발행 비용이 낮아진다는 점은 사회적으로 이익이다. 한은은 시중에 풀려 있는 26조원 이상의 1만원권 중 40%가 5만원권으로 대체되고 10만원권 수표도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수표 발행 감소에 따른 효과만도 한 해 2800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새 화폐가 도입되면 은행 현금입출금기(ATM) 교체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은행들은 연말까지 지점당 한 대씩 5만원권 이용이 가능한 ATM을 설치하기로 하고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은행권 전체적으로는 ATM 교체 작업에 3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