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가 몰려 있는 과천은 요즘 목하 고민 중이다. 여기저기에서 경기 조기회복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위기모드'를 유지하고 있는 정책 당국으로선 "아니다"고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요즘 시장 분위기를 보면 너무나 성급한 진단이 난무해 현기증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설비투자·고용 아직 캄캄‥" 성급한 회복론에 속타는 정부
◆경기지표 회복은 착시일 뿐인데…

재정부는 최근 개선되고 있는 각종 경기지표는 연초까지 지속된 '고(高)환율 효과'와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 덕분이지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기본여건)이 개선됐기 때문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경기회복은 정부의 재정 및 통화 팽창정책에 따른 측면이 강하며 아직 설비투자 확대 등 민간의 자생적인 경기회복력은 미약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두 자릿수 이상(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4월에는 25.3%나 급감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도 여전히 70% 안팎으로 지난해 80%대보다 낮다. 고용지표도 악화일로다.


◆경기 V자 회복? 3분기 이후가 더 걱정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했다. 2분기 성장률은 1분기보다 좋은 1~2%대가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경기의 V자 반등을 점친다. 하지만 정부는 이 또한 착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재정부 관계자는 "1분기 성장은 작년 4분기가 워낙 안 좋았던 데 따른 반사효과(기저효과)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환율 하락과 유가 상승 등의 악재가 본격 반영될 3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이 나올까 걱정"이라며 "하반기 더블딥(경기 일시회복 후 다시 침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 버블?

일각에선 최근 유동성 과잉에 따른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의 버블 우려를 제기하며 유동성 조기 환수를 주장한다. 재정부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의 경우 연초 이후 반등하긴 했지만 '사지가 얼어붙은 가운데 이제 겨우 심장에 온기가 온 정도'"에 비유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부자들도 최근 아파트 등 주택보다는 구조조정 기업들이 매물로 내놓은 빌딩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분위기"라며 "과거처럼 급속한 상승으로 버블이 낄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고 분석했다.


◆디플레보다 인플레 우려가 더 크다?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들썩이는 데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재정부 시각은 다르다. 인플레 우려가 나오는 것은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진 데 따른 것일 뿐 실제 물가 상승률은 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전년 동월 대비)로 1년8개월 만에 2%대로 낮아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환율 하락과 경기 하강 요인 등이 반영되면서 연간 기준으로는 2%대 후반의 안정세를 기록할 것"이라며 "지금은 인플레보다는 경기침체에 따른 자산가격 하락을 막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출구전략' 논하기엔 시기상조

일각에선 경기회복이 가시화됨에 따라 '출구전략(위기 후 정상화 방안)'을 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그러나 "하반기 환율 유가 등 악재가 산적한 가운데 출구전략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자칫 정부가 잘못 판단해 긴축기조로 선회하기라도 하면 과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장기불황에 빠져들 수도 있다"며 당분간 재정확대 기조를 유지할 방침을 밝혔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경기회복 기미가 보이면서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경기회복론에 취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미룰지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태/이태명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