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미국 국채를 놓고 '팔겠다''팔지 말아라'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부 시장참여자들은 그동안 우려됐던 세계채권전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이 갈등에 불을 지핀 것은 16일 정상 간 첫 모임을 갖는 브릭스 국가들이 마치 입을 맞추듯 비슷한 시점에서 미 국채를 팔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팔겠다고 밝힌 미 국채 물량만 하더라도 최대 1000억달러에 달한다. 가뜩이나 경기 부양 차원에서 올해 남은 기간 중 1조2000억달러의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할 미국으로서는 부담이 되는 규모다.

현재 브릭스 국가들이 보유한 미 국채물량은 1조711억달러로 전체 해외 보유분의 33%에 달한다.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서 투자대상국인 미국이 최근처럼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매각할 의사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이들이 매각에 나서면 미 국채를 보유한 한국 등 다른 국가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전염효과가 우려된다.

일부에서는 첫 모임을 갖는 브릭스 국가들의 '세력 과시용'이라는 해석도 있다. 미 국채를 팔아 국제통화기금(IMF)의 채권으로 교환하면 각종 국제기구와 앞으로 있을 국제협상에서 자신들의 발언권과 위상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브릭스 국가들이 미 국채를 매각할 경우 세계경제 질서와 국제금융 시장에는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이달 들어 이들이 매각할 의사를 보이자 10년 만기 미 국채수익률은 벌써 4%에 근접하고 한국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의 국채 수익률도 일제히 오르는 이른바 '채권금리의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금리 상승에 따른 강세 요인에도 불구,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점이다.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달러 가치를 알 수 있는 달러평가지수는 브릭스의 국채 매각 소식 이후 지금까지 1% 정도 떨어졌다. 원 · 달러 환율이 북핵 문제와 같은 전통적인 달러 강세 요인에도 1240원대로 하락하는 것 역시 같은 이치다.

미 국채 매각에 따른 달러가치 약화는 최근 거세지고 있는 중심통화와 지역공동통화 도입 논의와 맞물려 의외로 빨리 진행될 수도 있다.

브릭스 국가들이 미 국채 매각 의사를 보이자 중국 위안화,러시아 루블화 등이 일제히 강세로 돌아섰다.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화를 대신할 수 있는 슈퍼 통화의 도입 필요성을 잇따라 제기해 왔고 이번 회담에서도 브릭스 내 공동통화(가칭 브릭스 유로) 도입 방안을 핵심 의제로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미 국채와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면 대체안전자산 시장으로 자금이 몰릴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유가가 73달러대로 급등하고 국제 금값이 950달러 내외에서 안정적 흐름을 유지하는 등 원자재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것도 대체안전자산에 대한 수요 증가가 한몫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 국채금리 상승에 따라 국내 금리가 오르고 달러화 약세로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가 등 원자재 가격까지 오르면 '신 3고'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세계 어느 국가보다 이들 가격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 경제로 봐서는 앞으로 '신 3고' 현상이 가시화되면 될수록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브릭스 국가들이 미 국채를 매각하면 세계 최대 보유국으로 손실도 가장 크게 보기 때문에 매각 의사대로 당장 실행에 옮기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다.

최근과 상황이 비슷했던 1980년대 초 미국과 세계경제가 일본을 상대로 플라자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브릭스 국가와 대타협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줄어들지 않으면 미 국채 매각에 따라 금리와 원화 가치,유가가 동시에 올라가는 '신 3고' 현상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런 만큼 정부와 기업들은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 사전에 충분히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할 시점이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