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6월은 '잔인한 달'인 듯하다. 오늘로 9주기를 맞는 6 · 15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되새겨보고,뒤이어 올해로 59주년을 기념하는 6 · 25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는 동안,사회적 차원의 이념적 분열과 개인적 차원의 정신적 분열로부터 자유로울 이 많지 않으리라.

수년 전 일로 기억된다. 당시 인기가수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 '아시나요'를 둘러싸고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나기엔 석연치 않은 사건이 있었다. 뮤직 비디오 속엔 백마부대 용사로 베트남전(戰)에 파병된 일병이 베트남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나 결국은 전장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비극적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이 뮤직 비디오를 둘러싸고 해당 부대 측에선 "백마부대 1개 소대가 전멸하는 장면은 사실무근으로 군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기를 떨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부대 마크를 무단 사용한 것 또한 위법이니 두 장면을 삭제하라"고 강력히 요구했고,음반 제작사 측에선 "뮤직 비디오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허구적 픽션이며,특히 소대원들이 전멸하는 마지막 장면은 극의 하이라이트이므로 수정이 불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양측의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월남참전전우회 소속 용사들이 당시의 군복을 입고 문제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한 음반회사를 찾아가 격렬히 항의하는 장면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실 이 사건은 겉으로 드러난 해프닝보다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다. 베트남 참전을 둘러싼 관계자들 행동 속엔,당시 "명백한 국익"을 위해 생명의 위협까지 불사했던 자신들의 희생이 한번도 제대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데 대한 깊은 분노가 깔려 있었다. 한데 우리의 현대사(史)에 지우고픈 얼룩과 숨기고픈 상처가 어찌 베트남 참전뿐이겠는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던 E.H. 카의 명언은 특별히 한국적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듯하다. 불과 세 사람의 대통령만 거슬러 올라가도 5 · 16 뒤에 '혁명'이란 명예(?)가 부여되고 5 · 16 민족상 수상이 큰 영예로 인식되곤 했었는데,어느 새 5 · 16 뒤엔 '실패한 쿠데타'의 오명이 붙고 조국 근대화를 명분으로 한 개발독재와 유신체제,나아가 광주민주화항쟁의 근원으로까지 자리매김되고 있음이 우리의 현실 아니겠는지.

역사적 사건의 의미가 새롭게 재해석되는 과정의 역동성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나,6 · 15의 의미와 6.25의 의미가 상호배타적 지점에서 설정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요,어느 한편이 지나치게 윤색되거나 평가절하되는 오류 또한 경계해야 하리란 생각이다. 더불어 우리의 역사적 의미 평가 작업에 담긴 단순명료한 이분법,전부 아니면 전무,도 아니면 모,'내편=옳음,네편=그름' 식에 내포된 위험성을 적극 극복해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지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구 열강의 세력권 다툼에서 어이없이 희생된 비극의 역사가 드러나기도 하고,가장 비인간적인 수용소 상황에서 오히려 인간애의 정수가 꽃피던 감동을 경험하기도 한다. 왜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는가,뼈 아픈 성찰이 이어지는가 하면,혹 집단학살의 공포가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 미묘한 형태로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드는 건 아닌지,끊임없이 경계하며 역사의 오류가 반복되지 않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6 · 15와 6.25의 의미가 서로의 존재로 인해 어떻게 재조명될 수 있을지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을 그대로 펼쳐 놓고 공론화된 장에서 격론을 벌일 때가 온 것 같다.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이 다양할수록 이분법의 경직성은 완화되고,역사의 오류를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하나씩 풀리리라 확신한다.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