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0.1%를 기록해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났다. 실업률도 약간 감소했고 산업생산도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다. 수출과 내수 모두 여전히 부진한 상태라 본격적인 회복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경제가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인 것 같다.

그러나 가계의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있어 문제다.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것)은 지난해 1분기 8.14배에서 올해 1분기 8.68배로 상승했다. 더욱이 중간계층의 경우도 기업 및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예정이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메말라 있는 민생과 민심은 조그만 불씨에도 활활 타오르기 쉽고,최근 일련의 사태를 통해 그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허쉬만의 터널효과'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터널 속에서 길이 모두 막혀 있을 때는 어느 차선에 있는 사람도 참고 있지만 한 차선이 먼저 트이면서 여전히 정체상태인 다른 차선에 있는 사람은 불만이 고조된다. 이때 교통경찰의 지도는 먹히지 않고 짜증과 불만과 혼란이 중첩된다는 것이다. 이를 경제로 비유하면 경제가 어려울 때는 모두 고통을 감내하지만 경제회복이 고소득층에 먼저 일어나면 참고 있던 저소득층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양극화라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양극화라는 병을 평등 혹은 균형의 이름 아래 아래층을 올리는 정책보다는 위층의 성장을 억제하는 쪽을 택했다. 이는 당연히 저성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숙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저성장을 해결하라고 뽑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예상치 않은 글로벌 경제침체의 복병을 만나 국민 여망을 단기간에 부응할 수 없게 된 데다 경제회복을 위한 친기업 정책들이 오히려 격차 확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걱정이 팽배해지면서 민심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최근의 민심이반 현상은 민생의 문제에 가깝고 정부는 이에 대한 확실한 대책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우리 정도의 경제규모에선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기업과 근로자,그리고 시장이 스스로 잘해야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투자촉진을 위한 세제 개편과 규제 혁파,그리고 안정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자본을 제고하는 것이다. 국민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가 고도화할수록 물적 자본과 인적 자본보다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높아지게 된다. 사회적 자본은 신뢰를 기반으로 노사간 · 계층간 · 지역간 갈등을 완화하고 사회를 통합시킴으로써 강화된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하에서 국민의 고통 분담과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위기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함께 잘살 수 있다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위기극복을 위한 경제정책은 격차확대를 불가피하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정책은 복지정책과 함께 가야 양극화 심화를 막을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복지정책은 단순히 취약계층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기반 조성을 위한 투자의 개념에 가깝다.

물적 자원이 부족하고 인적자본뿐인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이 돈 많이 들어가는 복지국가를 선택하게 된 것은 돈이 남아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가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적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삭막한 무한경쟁에 노출된 국민의 안식처인 복지가 있을 때 보다 따뜻하고 더욱 강한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서로 포용할 수 있게 된다.

김용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