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무책임한 법안 처리로 정부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국회가 주요 관련 법안의 '반쪽'만 처리해 내년 예산 편성이 꼬이고 공기업 민영화와 통폐합 작업이 차질을 빚을 위기에 처했다.

15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요즘 기획재정부와 각 부처 예산 담당 공무원들은 내년에 들어올 내국세 총액이 얼마인지,지방교부금과 교부세(교육교부금 · 교부세 포함)는 각각 얼마나 쓸 수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예산안을 짜느라 죽을 맛이다. 각 부처가 6월 말까지 재정부에 예산 요구안을 제출하고 7월부터 협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잘못하다가는 총액도 못 정하고 재원 배분부터 해야 할 판이다.

이는 국회가 교육세를 개별소비세에 통합해 세율을 올리는 개별소비세법만 처리하고 정작 교육세 폐지 법안은 그대로 남겨둬서다. 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지금 상태로는 내년에 걷을 세금액을 정확히 산출할 수 없다"며 "20년 넘게 여야가 치고받는 걸 지켜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과제인 공기업 정책도 꼬였다. 공기업을 민영화하거나(산업은행법) 통폐합하는(한국토지주택공사법,주공-토공 통합) 법안은 통과됐지만 후속 조치 성격의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은 손을 놓고 있어서다.

현행 공공기관운영법은 매년 1월에만 공공기관 지정과 해제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하반기에 산업은행을 민영화해 산은지주를 출범시켜도 법률상으로는 계속 공공기관으로 남는다.

반대로 공기업인 주공과 토공을 합쳐서 만드는 한국토지주택공사는 민간 기업이 돼 버린다. 중간중간 공공기관으로 새로 지정하거나 해제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여야 정치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도 여야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쌍둥이 법안인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중 은행법만 통과시켰다. 10월까지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외환은행 SC제일은행 등 개별 은행은 산업자본 '9% 룰'을 적용받지만 KB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금융지주회사는 기존 4% 룰에 따라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차기현/김유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