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범죄발생 직후 용의자와의 일대일 대면에서 피해자가 한 “범인이 맞다”는 진술을 증거로 쓸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된 20대 배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배씨는 2007년 11월 초 새벽 부산 남구에서 혼자 걸어가는 20대 여성을 뒤따라가 바닥에 넘어뜨리고서 강제로 추행하고 때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피해자는 지나가던 경찰관과 함께 범인을 뒤쫓아 갔으나 골목길에서 놓쳤고,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모자를 쓰고 검은색 패딩점퍼를 입었다”고 진술했다.

경찰관은 근처에 젊은 남자가 사는 집을 수색하다 배씨가 모자가 달린 두꺼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양말도 신은 채 잠든 모습을 하고 있고 방 안에 모자와 패딩점퍼가 놓여 있는 것을 찾아냈다.경찰은 피해자를 데려와 배씨와 대면시킨 다음 범인이 맞다는 대답을 듣고 곧바로 배씨를 체포했다.

1심 재판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했다.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말하는 인상착의를 상세히 기록한 다음 용의자를 포함해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한 것 아니라서 기억력의 한계가 있을 수 있는 등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피해자를 용의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과 대면시켜 그중에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해야 하지만 범죄 발생 직후 기억이 생생한 경우라면 일대일 대면도 허용된다”며 “‘범인이 맞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한 원심은 잘못됐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